김수환 추기경은 평생 자신의 온몸으로 살아온 ‘사랑과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고 지난 2월 16일 선종했다. 지난해 9월 11일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한 지 159일 만이었다. 투병생활 중에는 밤을 새며 김 추기경의 손과 발이 되어준 주치의 정인식 교수(소화기내과)와 김영균 교수(호흡기내과)가 항상 곁에 있었다. 이들의 헌신적인 진료와 돌봄으로 김 추기경은 3차례 위기상황을 잘 넘기고 지난 12월 24일에는 휠체어를 타고 성탄전야미사에 함께하며 강남성모병원 환우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김 추기경이 떠난 지 열흘만인 2월 26일 강남성모병원 교수실에서 주치의인 정인식 교수와 김영균 교수를 만났다.
■ 정인식 교수(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자애로우면서도 책임감 강하신 분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정인식(루카)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 주치의로 통한다. 정 교수는 4년 전 김 추기경이 “정 교수가 내 주치의”라고 말하면서 주치의가 됐다. 김 추기경은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정 교수를 제일 먼저 찾았다고 한다.
정 교수는 김 추기경의 선종 후 주치의로 알려지면서 여러 언론사와의 인터뷰로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인터뷰할 때마다 그분을 생각하고 떠올리니 너무 그리워진다”며 입을 뗐다. 정 교수는 인터뷰 내내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분께 누가 되는 건 아닌지 항상 숙고한다”며 고인을 먼저 생각했다.
정 교수에게 있어 김 추기경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지난 10월 4일 김 추기경님이 의식을 잃으신 적이 있어요. 다행히 다음날 새벽에 깨어나셨지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진료하는 동안 정 교수 마음속의 김 추기경은 이미 가족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그분을 뵌 것은 제가 레지던트였던 지난 1973년이었습니다. 명동에 있던 성모병원에서 대중연설 하실 때였습니다. 신장 결석이 있으셔서 만약을 대비해 제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죠. 가볍지 않은 병에도 연설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심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은 36년간 지속됐다. 정 교수는 2003년부터 주치의로 주교관을 방문해 김 추기경을 직접 진료했다. 정 교수는 “비록 자주 뵙진 못했지만 진료를 통해 김 추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추기경님은 정말 따뜻하신 분이셨어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셨죠. 작년 입원하신 후에도 당신이 특실을 차지하신 게 마음에 걸려 1인실로 옮겨달라고 하셨습니다. 또 특별대우 하지 말라고 계속 당부하셨습니다.”
정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을 진료하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날로 커졌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항상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친절하셨어요. 그런데 독재정권과 싸우셨던 김 추기경님을 보니 약한 사람을 위해 강함을 택하신 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 교수는 “김 추기경은 약자에게 약하고 진리 안에 머무르지 않는 강자에게 강했던 분”이라며 김 추기경을 떠올렸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 같이 지극히 순수하고 자애로우신 분으로만 알았죠.”
정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할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현실로 다가오니 빈자리가 훨씬 컸습니다.” 김 추기경의 선종은 정 교수에게 가슴 허전함으로 다가 왔다. “김 추기경님이 떠나신지 열흘이 지났지만 그분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네요.”
주위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라고 말을 하지만 정작 정 교수는 겸손해 했다. 단지 의사로서 소명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다른 환자와 똑같은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 김 추기경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는 정 교수.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했지만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정 교수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었다.
▶ 정인식 교수는
1970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인식 교수는 1975년 내과 레지던트와 전문의를 거쳐 1978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대학교 내과학 교수로 활동해오고 있다. 1996~2001년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진료부원장과 내과 주임교수(2004~2006년)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소화관운동학회 회장과 대한내시경학회 초대 이사장, 대한소화기학회 회장도 역임한 바 있다.
■ 김영균 교수(강남성모병원 호흡기내과)
투병 중에도 주위에 기쁨 주려 노력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한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며 큰 행복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였던 호흡기내과 김영균(프란치스코) 교수는 김 추기경과 함께 했던 지난 5개월을 의사로서 최고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환자와 의사로 때로는 추기경과 평신도로 보낸 시간은 그에게 의사와 신자로서의 소명의식을 다시금 되새겨준 은총의 시간이었다.
김 교수가 주치의로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해 9월 중순 경이었다.
“첫 만남은 김 추기경의 가래에 혈이 묻어 나온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였어요. 평소 멀리서만 뵙던 분이었는데 의사와 환자로 만나니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첫인상이 마치 친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았다는 김 교수. 그가 기억하는 김 추기경은 권위의식이 없는 누구에게나 다정한 따뜻한 분이었다. 또한 투병생활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려 노력하는 분이셨다.
“지난해 10월 4일 위급상황이 발생했어요. 가래를 스스로 뱉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기경님은 호흡곤란으로 산소가 부족해 의식을 잃으셨죠. 모든 의료진이 돌아가시는 줄 알았지만 극적으로 회복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깨어나셔서 ‘나 부활했어’라고 말하시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군요.”
투병 중에도 상대방을 먼저 배려해주는 김 추기경의 모습은 그에게 많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제가 맡은 일은 주치의로 가래를 뽑아내는 일이었습니다. 가래를 제거하는 동안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항상 저에게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죠.”
김 교수가 주치의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 설날에 김 추기경에게 세뱃돈 만원을 받은 것이었다.
“세배를 드리니 웃으시며 힘겹게 손으로 병실 한 쪽 책상을 가리키셨어요. 책상 속에는 수첩이 들어있었는데 겉표지에는 추기경 문장이 새겨져 있었고 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김 추기경이 세뱃돈과 함께 전해준 덕담 한마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세요”라는 말은 그날 세뱃돈 만원과 함께 김 교수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김 교수는 추기경을 치료하며 가장 안타까운 일로 투병 생활 중 혜화동 주교관에 모시고 가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김 추기경님은 당신이 지내시던 곳을 너무 그리워 하셨어요. 기력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시면 언제 집에 갈수 있는지 묻곤 하셨죠.”
김 추기경을 떠나보내고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는 김 교수.
“김 추기경님께 날이 따뜻해지면 모시고 간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너무 가슴 아프다”며 끝내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추기경님과 함께하는 동안 의사로서 신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시 환자를 돌보는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김 추기경의 사랑과 감사의 메시지는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 김영균 교수는
1982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김영균 교수는 1989년 내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하고 1995년 의과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로 활동해오고 있으며 2009년 2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대외협력부원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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