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축구선수가 경기를 하다가 상대편 선수의 심한 태클로 부상을 당했다. 이 선수는 상대방 선수에게 달려가 자신이 당한 만큼 똑같이 되갚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선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편 선수에게 아프냐고 묻고,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 웃었다.
이것이 바로 은총이다. 은총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신형태, 그래서 과거보다 더 성숙한 그 삶 안에 하느님 은총이 놓이는 것이다.
조금 더 앞으로 나가보자. 그리스도는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 우리를 ‘인정하는 기투’(Appreciative Abandonment)에로 이끌어 당기신다. 여기서 ‘인정하는 기투’란 하느님의 뜻을 인정(수락)하고 그 뜻에 나의 뜻을 온전히 포기하고 내어 던진다는 의미다. 인정하는 기투의 반대말은 ‘외면하는 기투’(Depreciative Abandonment)다. 외면하는 기투란 하느님 뜻을 외면하고 살아가며 그저 돈과 권력 등 세속적인 것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포기 당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끌려가는 삶이 그것이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 스스로의 삶을 조율해 나간다. 여기서 조율이라는 말을 쓴 것은 인생이 어느 시점에 완성된 형태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미완성이다.
사람들은 종종 혈기 왕성했던 20대와 30대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건강한 몸, 주름살 없는 얼굴 그리고 재빠르고 능동적으로 정신활동을 할 때가 그리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외적인 것, 외향 형태와 정신적인 교류형태만을 가지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육신에 바탕을 둔 외향형태와 정신적 교류형태 보다는 핵심적인 마음 형태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20대의 눈, 입, 코, 손, 발 보다는 영적으로 승화된 70대 할머니의 눈, 입, 코, 손, 발이 더 아름답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20대는 인생을 성찰하고 관조하기 보다는 이리저리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 투박하고 거칠고 모난 것들을 다듬고 깎아가는 작업이 바로 조율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생을 거쳐 자신의 육신적 정신적 부족함을 조율하며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20대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성형수술도 하고 운동과 컴퓨터도 한다. 그만큼 20대의 몸과 정신이 현란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20대의 건강한 몸도 정신도 그리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인간의 본모습(본질)은 그렇게 가꾸는 것이 아니다.
몸과 정신을 위해 책을 열심히 보고, 자연을 보고, 귀로 좋은 소리를 듣고, 나쁜 것을 들어도 좋게 해석해야 한다. 또 말도 아름답게 하고 정신도 거룩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조율될 때 그 몸과 정신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간의 몸과 정신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평생에 걸친 이 조율은 나의 과거 외향 형태에 대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새로운 외향 형태를 가져야 된다. 새로운 정신적인 차원의 교류형태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부활한 몸이 바로 이러한 몸이다.
이것이 바로 초형성의 길이다. 초월적 형성의 길이다. 우리는 왜 미사에 참례하는가. 왜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가. 과거의 외향 형태와 정신적 교류 형태를 죽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는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무의미하게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눈과, 감각, 귀, 입 그리고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자. 입모양도 바꾸고, 눈매도 바꾸자. 성형수술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신도 바꾸자. 나는 매사에 어떻게 판단을 내리며 인지 작용을 하고 있는가. 성령수술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은 형성의 장 안에서 우선적으로 인간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기에 그렇다. 매일 혼자서 촛불 앞에서 기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눈과 귀, 나의 모든 내면 정신세계를 인간관계를 통해서 회복해야 한다. 어떤 인간관을 가질 것인가. 인간 관계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은 나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하고 완성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핑계 댈 것 없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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