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기경님께서 주문하신 묵주는 딱 803개가 남았습니다. 이것만 모두 엮어 비서실에 전해드리면 이제 다시는 ‘추기경 묵주’를 만날 수가 없겠네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신자들의 손에 남긴 마지막 선물은 묵주였다.
평소 김추기경은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꼭 선물을 쥐어줬다. 손가락을 펴보면 묵주나 김추기경의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가 있었다. 묵주는 기도 많이 하라고, 열쇠고리는 천당 문 열라며 전한 것이었다. 김추기경이 항상 옆에 두고 하나씩 나눠주던 이 묵주와 열쇠고리들은 지난 2월 22일 서울 명동성당과 용인 성직자묘역에서 봉헌된 추도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에게 전달됐다. 끈매듭으로 이은 나무알, ‘김수환’ 이름 석자와 사목표어가 새겨진 십자가, 기적의 패가 각각 달린 5단 묵주였다.
손규례(도미니카·65)씨는 김 추기경이 손님들에게 선물한 묵주를 만들어왔다.
“100퍼센트 수공예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 하나씩이 빠지곤 해요. 추기경님께서 손님들에게 선물하시는건데, 불량품이 생기면 자칫 추기경님께 누를 끼칠까봐 마지막 검사 때 묵주알을 헤아리는 며느리 손은 늘 땀이 날 정도였지요.”
모든 재료를 국산품으로 주문해 일일이 손으로 만들다 보니 보통 6명의 인원이 묵주를 엮어왔다. 마지막 주문 묵주는 3월 10일까지 모두 만들었다. 만드는 이들 모두가 신자는 아니었지만, 매일 기도를 바치며 묵주를 만든 덕분에 비신자들도 자연스레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김 추기경의 선종 이후 미뤄왔던 세례를 받겠다고 전해온 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도 ‘추기경 묵주’를 가진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묵주는 김 추기경이 직접 선물하는 것이어서 외부로 유출된 것은 단 한개도 없다. 김 추기경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었다는 것.
“한번 뵐 기회가 있겠지, 있겠지 하다가 결국 추기경님께서 떠나셨네요.”
손씨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묵주를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 때문에 꽤나 곤혹도 치렀다. 추도미사 때 나눠준 묵주도 김 추기경 선종 전에 만들어 전한 묵주였을 뿐 그 자신도 따로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의 비서 수녀는 미리 주문돼 마지막으로 만들고 있는 묵주들은 전국 각 교구 사제들에게 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제 추기경님의 묵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깝지만, 그동안 추기경님께서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신 묵주알 하나하나가 사랑으로 영글어진다면 이 세상이 더욱 밝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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