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절제’에 도전한 가톨릭신문 세 기자는 각각 2주차에 금단현상을 맞이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순시기의 절제의 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났으며, 적극적인 이해를 표현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절제와 희생은 언젠가 ‘결실’을 맺는다고 했다. 기자 각자가 포기하는 개인적 삶의 한 부분이 정말 ‘무엇’이 될 것인가는 사순이 끝난 40일 후에야 알게 될 일이다.
‘금육’ 오혜민 기자
미치겠다.
금육을 시작한지 오늘로 12일째다. 아직도 28일이나 남았다. 시간이 이렇게 더디 가는 줄 몰랐다. 남들이 보면 그까짓 고기, 12일 안 먹었다고 ‘엄살’이라 할지도 모르기에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는 ‘육식주의자’였다.
지난 재의 수요일 미사 때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금단현상이 와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고기를 끊자마자 바로 고비가 찾아왔다. 지난 토요일, 후배 기자의 결혼식. 결혼식의 꽃은 뷔페라 하지 않았던가. 탕수육과 갈비들을 기웃거리다 나는 브로콜리 두 개를 달랑 집어 들었다.
김밥과 버섯볶음, 나물무침, 국수. 어라, 제법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뷔페에 가서 한 번도 집지 않은 것들이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후배 기자들은 내 앞에서 해맑게 갈비를 뜯고 있다.
“오선배, 이 갈비 진짜 맛있어요.”
그 갈비, 맛있는지 나는 더 잘 안다. 불고기는, 오리고기라고 맛이 없겠니.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그냥 눈을 감았다.
이어진 저녁식사. TV끊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지연 기자와 선약했던 일이라 꼭 참석해야하는 자리다. 메뉴는? 암퇘지 갈비다. 돼지 중에서도 암퇘지라니. 차라리 쌈밥집이라면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 것을.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 앞에서 김치찌개와 밥을 시킨다. 때마침 주말 연속극이 한창이다. 이지연 기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기자가 TV를 뒤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 기자의 고기 먹는 모습을 보며 침을 삼키고, 이 기자는 TV를 보는 내 눈을 흘깃거렸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다. ‘고기를 왜 먹지 않느냐’ ‘TV를 왜 끊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천주교의 ‘사순’에 대해 설명하고 절제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절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시작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나를 오히려 이해해주니 신기하다.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와 함께 화제도 잠시 ‘천주교’로 바뀌었던 것 같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니 얼마 시키지도 않은 내 앞의 고기가 다 탔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까워서 눈물이 다 나올 것 같다.
금육을 하고 있는 요즘, 가장 힘든 것이 다른 사람과 메뉴 맞추기다. 나로 하여금 함께 절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끼 정도를 양보하고 즐거워했다. 세상에 고기 메뉴가 이토록 많은지도 이제야 알았다.
길을 걷다가 통닭과 삼겹살 냄새만 맡아도 침을 꼴깍 삼킨다. 이러다 상 위에 소갈비라도 올라오는 날에는….
사순은 어느덧 제 3주일을 가리키고 있다.
‘금연’ 이승환 기자
예상 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면 하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도로. 정체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서 할 일이 없다. 옆 자동차 문이 스르륵 열리고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밀리는 차 안에서 시간 때우기로는 담배가 최고다. 아! 맛있겠다.
장면 둘.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치자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옆 테이블에서 날아온 담배 연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취기가 오를 때 담배 한 개비는 정말 기가 막힌 안주였는데….
장면 셋.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경기를 보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팍팍 오른다. 콜드 게임이라니. 그것도 일본에게. 현관에 나가 담배 한대 피면 딱 좋겠구먼. 하필 포수 뒤편 광고판에 ‘禁煙(금연)’ 문구가 보이는 건 뭐지?
이렇게 광고하며 시작할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취재처에 들르니 ‘담배 끊었다며? 이제 어쩌냐’라는 말이 인사에 앞서 나온다. ‘담배 한 대 피면서 이것저것 이야기해야 취재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겠어?’라는 유혹도 끊이질 않는다.
신문지상을 통해 알린 것이 후회된다. ‘서울을 벗어나면 좀 나아지겠지’라는 생각도 보기 좋게 틀렸다. 대전에 가도 수원에 가도 ‘신문에서 봤는데 그거 가능하겠냐’는 이야기다. 보란 듯이 담배를 펴대는 통에 미칠 지경이다.
문제는 담배를 끊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에 온통 담배 태우는 사람들뿐이니 그럴 수밖에. 금연 지속을 위한 선행 과제 하나. 우선 담배 피는 사람을 피해야 할 것 같다. ‘너도 한번 담배 끊어볼래. 몸이 좋아지는 것 같아’라는 생전 한 번도 하지 않던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이러다 대인기피증 생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요즘 내가 담배 피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이제 고작 일주일 지났을 뿐인데 사탄의 유혹을 떨치기 힘겹다. 40일이 400일 같다.
40일 동안 단식하신 배고픈 예수님은 그 유혹을 참아내셨는데 난 이제 일주일 만에 사탄 이야기를 들먹이고 있자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일주일이 다시 시작됐다. 이주의 금연 길라잡이는 ‘최대한 유머를 사용하라’다.
‘지나치게 비장하거나 진지하면 주위의 흡연자들에게 공격당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또 너무 뻣뻣하게 굴면 작은 유혹에도 쉽게 꺾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담배 문제에 대해 여유를 가지고 웃음을 만들 수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도 쉬워질 것입니다.’
선배 기자 중 한명이 적어놓은 메신저 대화명대로 금연을 이어나가려 한다.
‘마음먹기 나름!’
‘TV끊기’ 이지연 기자
주일미사 후 보좌 신부님을 비롯해 청년 몇 명과 맥주를 마시러 갔다. 호프주점의 문을 열자마자 자연스럽게 TV에 눈이 향했다. 마침 TV에서는 주말에 즐겨보던 ‘가문의 영광’이 한창이었다.
순간 얼굴이 굳었다. 토요일 방영분 내용을 이미 전해들은 터라 더욱 궁금해 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함께 자리한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강석(남자주인공의 극중 이름)과 단아(여자주인공의 극중 이름)의 목소리가 들리면 부지불식간에 어깨가 돌아가 있었다. 이어서 얼굴까지 TV 쪽으로 돌리려는 찰나 사순기간 동안 지켜야 할 약속이 번뜩 생각났다. 습관은 역시 무서웠다.
‘40일 간 TV 끊기’
TV를 끊은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생각했는데 더디게만 느껴진다. TV를 안 보기 시작한지 2~3일이 지났을 때까지만 해도 금단현상이 없었다. 아예 포기를 하고 나니 생각보다는 TV를 안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절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에 봉착했다. 어쩔 수 없이 TV를 접해야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TV를 접할 수 있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과 길가에 설치된 TV와 사람들의 디엠비(DMB) 등등. 그런 기기들을 피할 수 없을 때마다 상당히 곤욕스러웠다. 마음대로 TV를 끌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절제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순간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겪으셨던 고난을 기억했다. 또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셨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광야에서 한번쯤은 유혹에 빠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혹을 견뎌내셨다. 모두 기도의 힘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기도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주님처럼 단호할 수 없지만 말이다. 길을 지나가도, 지하철 안에서도, 디엠비를 보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눈은 이미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서 순간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겠다’고 다부지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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