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는 구절은 마음을 숙연하고도 벅차게 한다. 내가 하느님을 택했다는 무례함에서 점차 택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가게 한다.
연중시기를 지내다보면 기다림과 설렘의 대림과 함께 아기 예수님의 탄생 축하로 온 누리가 들뜨게까지 한다. 사순시기인 지금 절제, 금육, 희생을 다짐하며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지만 주님 수난에 동참한다던 초심에서 서서히 흐려지는 부끄러움도 갖게 된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6)
주님은 세상을 위해 절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이런 사랑의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와 간구로 주님의 일생을 묵상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예수님 탄생의 기쁨이 환희로 당당한 공생활의 모습이 빛이 되며 부활의 감격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하다. 고통의 기도는 속된 인간감정에서 오는 지향의 방향이 망설여지고 주저되기도 한다. 삶 속에서 많은 은총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작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졸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아와 사고, 억눌림, 일상에서 겪는 갈등과 좌절 속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와 지혜로 감내하지 못하고 나약한 신앙인으로 머물 때 주님께 부끄럽다.
주님은 모든 이에게 각기 다른 은총의 몫을 주시고 우리가 견뎌 낼만큼의 고통도 주신다. 투병 중의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신앙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 하겠다는 메일을 받고 이런 믿음은 우리 신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은총이라 생각한다. 선천적인 불구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병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 ‘고통 없는 세상’(a life without pain)이란 영화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고 두려운 고통인가? 아무도 원치 않는 아픔일지라도 그 아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영화에서 배운다. 고통 없는 삶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을 아는 삶에 감사하며 고통을 모르고 사는 이들을 위한 기도와 봉사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돌아오는 부활 판공에는 나를 찾는 열심한 사순시기로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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