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곧 세포분열이 시작돼, 발아기 배아기 등을 거쳐 태아가 된다. 그 작은 세포가 만나 복잡한 인간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스럽다. 태어난 아기의 몸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요즘 초등학생 아이들은 신발을 사주어도 오래 신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몸 속에서도 끊임없는 세포 갈아치기가 계속되고 있다. 10년 전 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세포는 지금 나에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만약 죽지 않는 세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암이다.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그 ‘나’가 아닌 것이다. 몸은 이렇게 늘 성장, 형성, 변화해 간다. 정신도 마찬가지이고 영적인 차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변화한다. 게다가 그 변화는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는 그 어떤 방향을 목표로 곧게 나아간다. 인간은 정지돼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도, 세계도, 우주도 그렇다.
그 무엇인가로 형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다(이 글에서 끊임없이 말고 있는 형성적 영성이란 이런 의미에서의 형성적 영성이다). 이 세상은 그냥 무의미하게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하심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가는 초월을 향해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인간은 비결정론적 존재다. 미리 완성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형성되도록 초대받고 형성의 장 속에서 형성을 향해 나아간다.
우린 때때로 “저 사람 성격은 못 고쳐”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다. 한 개인은 계속 변화하고, 일생을 통해 조율된다. 성격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100% 내성적이기만 한 사람, 100% 외향적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인간의 성격은 종합적인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주로 나타나는 성향이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한다.
문제는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형성될 수 있도록 미리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선형성(pre-formation)된 토대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앙인인 우리는 과거의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금 더 깊은 영적인 상태로 거듭나야 한다. 세례성사가 무엇인가. 과거의 정신 상태에서 죽고, 영이 스며드는 새로운 영적 상태로 인도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성체성사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정신상태가 아닌 새로운 정신 상태로 깨어나야 한다. 고해성사가 무엇인가. 역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 태어남은 한 순간에, 어느 한 시점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이뤄지는 지속적 형성(on-going formation)의 조율 작업이다. 이렇게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은 “예”로부터 시작한다. “예”라고 응답할 때 우리는 정화되고, 치유되고, 온전하게 된다.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정신에 의지하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영에 의한 삶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는 삶은 우리 각자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내 힘으로만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과거의 형태가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는 변화되도록 불림 받았다. 결국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초대에 불응하는 것이다. 초대를 받고도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바보가 되어선 안된다. 하느님의 영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과거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없다.
과거의 삶의 형태는 정화될 요소가 많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지난 나의 삶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 잘못된 여러 형태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성인(聖人)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내가 의도가 있었든, 아니면 의도가 없었든 나의 과거는 상처와 잘못과 쓰린 것들이 많다. 의식 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정화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교류형태, 정신상태의 삶으로 옮아가야 한다. 치유되고, 정화되고,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