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시내는 구불구불하다. 성 바오로 알라 레굴라(San Paolo alla Regola)를 찾아가는 길도 그랬다. 오래된 건물과 도로가 즐비한 나라.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고 나니 성 바오로 알라 레굴라가 보인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바오로는 셋집에서 만 이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고 했다. 게다가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초인종을 누르자 누군가가 문을 열어준다. 안내 간판에는 사도 바오로가 2~3년간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사도는 경비병의 감시를 받는 가택연금 상태로 머물렀지만 자유로이 전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가택연금 후에 추정되는 바오로의 행적은 학자들마다 다르다. 스페인에 가서 전도했을 것이라는 학설과 바로 순교 당했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바오로 알라 레굴라가 바오로 사도의 가택연금 장소였는지도 확실치 않다. 다만 오래된 전승과 함께 사도가 곡식창고 지대에 머물렀다는 자료가 있는데 이곳에서 곡식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점, 사도의 주업종인 천막을 만들려면 물이 근처에 있어야 하는데 이곳이 예전 강 유역이었다는 점 등이 심증으로 작용할 뿐이다.
문을 들어서니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성 바오로가 머물렀고 가르쳤다(DIVI PAULI APOSTOLI HOSPITIVM ET SCHOLA)’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안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니 바오로 성화가 놓여있다. 팔에 주렁주렁 쇠사슬을 매단 그가 복음을 전하고, 그 뒤에는 로마 병사가 누워있는 모자이크화다.
성 바오로는 ‘쇠사슬’에 묶였으나 하느님의 말씀은 묶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갇혀있음에도 복음을 전했던 사도를 떠올리며 나는 숙연해졌다.
한 신부가 급하게 내려와서 무슨 일인지를 묻는다. 이곳을 담당하는 조르지 올라에체아 신부(그리스도 공동체의 벗들 수도회)다.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그는 이곳이 예전 시내와 변두리를 잇는 요충지였으며 바오로가 선교를 위한 전략적 위치를 이곳으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난데없이 사도에 대한 평소 생각을 물었다.
“쇠사슬에 묶여 자유로운 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신 분이죠. 자신의 사명을 알리는데 엄청난 ‘용기’를 가지신 분이었어요.”
지금까지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사도 바오로를 아는 세계인들은 모두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명’과 ‘열정’을 잃지 않았던 사람.
이제 바오로 사도의 순교가 숨 가쁘게 다가오고 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가 그토록 가고자했던 로마에서의 나의 일정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성 바오로 알라 레굴라를 빠져나오며 조금이나마 사도를 닮고 싶은 마음에 “‘사명’과 ‘열정’을 지닌 채 당신의 죽음을 만나러 가겠다”고 취재수첩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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