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것을 지각없이 마구잡이로 쓸 때 ‘물 쓰듯 쓴다’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제 강원 남부 태백, 정선 지역에서는 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제 물은 귀하신 몸이 됐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강원남부의 겨울 가뭄은 지역주민들의 생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빨래는 물론이고 씻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 없었다. 제한급수가 시작되면서 시간에 맞춰 물을 받아놓고 쓰는 불편이 계속됐다.
원주교구 장성본당 봉사부장 최영철(암브로시오·58)씨는 “평일미사에 열심히 나오시던 분도 급수시간과 미사시간이 겹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성당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도 여전히 제한급수가 이뤄지고 있어 빨래나 설거지 등에 받아놓은 물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사용하는 물의 양이 평소보다 더 많고 깨끗하게 씻기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장성본당 소속 공소인 철암공소 주변 고지대에 사는 신자들은 제한급수마저 불가능해 모터를 이용 개울물을 끌어 올려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공소 신자 이현희(세라피나·82)씨는 “태풍 루사 때도 집이 떠내려 간 적이 있지만 이런 가뭄은 내 평생 처음이다”라고 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생수를 기증하는 등 온정이 잇따르고 있지만 식수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태백지역으로만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태백시 5개 수원지 중 하나인 백산 수원지는 관할 지역에 24시간 물을 공급하려면 2700t이 필요하나 이미 말라버린 상태이고 60t급 급수차량을 기준으로 시내에 있는 황지연못에서 4대(240t), 금광골에서 2대(120t)의 물과 관정에서 끌어올린 50t의 물을 합쳐 바로 착수정에서 염소를 뿌려 정화한 후 각 가정으로 공급하고 있다.
태백시청 상수도사업소에서 근무하는 장성본당 사도회 총무 김영복(안드레아)씨는 “하천이 말라가면서 바닥에 있는 물까지 퍼올리다 보니 물 밑에 찌꺼기나 모래가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물은 수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백지역의 임시 식수원이 되고 있는 황지연못도 평소 수심 4m로 물에 잠겨있던 바위의 밑둥까지 수면 위로 보일 정도로 수위가 줄고 있다. 3월 13일 태백, 정선, 영월 등에 11~18mm의 단비가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겨울 평균 강수량이 평년의 70%에도 못 미치고 있으며, 이날 강우량보다 더 많은 양의 비가 며칠간은 계속돼야 가뭄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주교구 사북지역 역시 처음에는 시간급수로 통제를 했으나 현재는 구간별로 관로를 잘 차단해 고한, 사북 지역에 적은 양이지만 24시간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사북본당 신자 진병운(발렌티노·74)· 이춘화(레아·73)씨 부부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안정을 찾았다”며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 이웃끼리 식수가 부족하면 서로 나눠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물이 제대로 공급되기 전까지 진씨 부부는 할아버지가 광산에서 일하면서 얻은 진폐증으로 평일에는 병원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할머니 역시 얼마 전 허리 수술을 했음에도 외부 물탱크에서 혼자 물을 길어 나르느라 제대로 쉴 수 가 없었다. 물탱크 까지 가는 길이 경사져 있어 한겨울에 길이 얼기라도 하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다.
물이 제대로 나오기 전까지 사북지역 강원랜드 철거촌은 외부 물탱크에 호스를 연결하고 모터를 돌려 집안으로 호스를 끌어들여서 썼지만 호스가 외부에 있어 스티로폼으로 보온처리를 해도 쉽게 얼어붙어 호스를 잘라버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나이 많은 노인들이지만 결국 직접 물을 길러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박연옥(안나·77·사북본당)씨는 “6·25때 폭격을 맞아 허리를 다쳐 지금까지 허리를 잘 쓸 수 가 없다”며 “한참 단수가 됐을 때는 젊은 친구들이 와서 물통을 들어다 줬다”고 말했다.
단수나 제한급수로 인한 피해 이외에도 각지에서 전달된 생수를 소모하고 난 페트병 처리 문제도 시급하다.
태백지역 철암공소 주변 고지대 신자들은 “이 주변에는 쓰레기 처리장이 없다”며 “빨리 처리되지 않는다면 시에 항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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