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따뜻해졌지만 지난해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 크리스(29)씨에게 ‘봄’은 멀고 먼 이야기다.
크리스씨가 화상을 입은 것은 올해 설 연휴. 외로운 이주노동자들끼리 모여 설을 지내기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추운 겨울, 친구 집에 놀러가 잠을 청했던 그는 너무 추운 나머지 재래식 난로 주변에 꼭 붙어 잠을 청했다.
새벽 3시. 잠결에 재래식 난로에 가까이 간 그가 난로를 쓰러뜨리는 바람에 그의 등에 불이 붙었다. 등에 붙은 불은 순식간에 그의 머리까지 옮겨갔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전신이 불에 탔을 뻔 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설날 연휴에 문을 연 병원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약국을 찾아 간단히 소독을 하고 3일을 꼬박 앓았다. 등의 화상을 그대로 방치한 채 제대로 누워있지도 못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허윤진 신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병원을 찾은 그는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하루 40여만 원 가량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일이 있을 때마다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그에게 치료비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돈이다. 부치지 못한 동생들의 학비도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저는 돈이 없어요. 치료를 그만 두면 안 될까요? 저는 일도 계속 해야 합니다.”
화상이 낫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치료와 함께 피부이식수술도 필요하다. 등에 입은 화상 때문에 지금까지도 누워 자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7남매가 의지하며 살았어요. 너무 가난해서 대학에 못 간 저는 한국에 와서 일하며 동생들 학비를 마련했어요. 고국에 있는 형제들이 걱정할까봐 말도 못했어요.”
그는 현재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베다니아의 집에 머물며 홀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취재 도중, 몸을 조금 움직이자 거즈를 댄 그의 등에서 또 다시 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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