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3월 23일 40주년을 맞았다.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지년(不惑之年)이다. 1963년 교구설정 5년 뒤인, 1969년에 출범한 수원교구 평협은 지금까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수많은 땀을 흘렸고, 이제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복음화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40년 발자취들을 돌아본다.
1969년 2월, 당시 수원교구장 윤공희 주교는 교구 평협 결성을 지시한다. 이에 27개 본당 대표와 단체 대표 등 55명은 한달 뒤인 3월 23일 창립총회를 갖고 조성지(프란치스코) 회장을 주축으로 하는 1대 임원을 선출했다. 평신도 역량의 조직화를 통해 교구 평신도사도직이 걸음마를 떼는 순간이었다.
틀이 만들어지자 내용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제1회 평신도사도직 세미나가 그해 8월 열렸으며, 이듬해에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합동 세미나가 열렸고, 꾸르실료 사무국이 설치됐다.
당시 평협의 화두와 과제는 ‘교육’이었다. 1971년 2대 회장으로 선임된 이창복(노르베르토) 회장을 비롯한 2기 회장단은 다져진 조직을 활용, 평신도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본당 운영위원 교리강좌를 개최하고, 농촌본당 지도자 교육도 실시했다. 가톨릭학사회와 가톨릭농민회, 성령쇄신봉사회가 잇달아 설립된 것도 모두 1970년대 초반이었다. 현 교구 평협 회지(會誌)의 전신이 되는 ‘가톨릭 수원’이 창간된 것도 1973년이다.
1970년대 후반 및 80년대 초반, 3대 김용배(미카엘) 회장, 4대 황백규(요셉) 회장, 5대 김인근(식스토) 회장, 6대 황백규(요셉) 회장 시기를 통해 평협은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맞는다. 미리내 순교자 현양대회에서 평신도가 직접 강론을 함으로서 평신도들을 고무시켰으며, 한국 순교시성 시복을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했다. 여의도에서 열린 103위 시성식의 감동에 함께한 것도 이 시기였다.
7~8대 우건석(아우구스티노) 회장, 9~10대 조태로(간디도) 회장 시기에 이르러 평협은 스스로의 외연을 더욱 확대시킨다.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치러냈으며, 신뢰회복운동, 생명공동체 운동, 공명선거 캠페인 등을 활발히 전개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서명운동도 전개했으며, 낙태방지를 위한 교육 자료, 환경보전을 위한 교육 자료도 발간했다. 낙태 설문조사, 청소년 신앙실태 조사, 복음화 조사 등 복음화를 위한 기초자료 구축 노력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교구 단체 관리규정, 지구 평협 회칙과 평신도사도직 연구위원회 회칙, 장의업무 편람, 가톨릭가정예식서 등이 간행된 것도 이 때였다. 수원교구가 농촌교구에서 도시교구로 변신하던 시점이었던 만큼 도시본당 대형화에 따른 문제점도 이 시기에 평협에 의해 제기됐다.
11~12대 박인환(베드로) 회장, 13~14대 황재웅(마태오) 회장 시기는 교구 평신도사도직의 꽃망울이 터지는 때였다. 통일기도운동 및 통일 성금 저축운동이 전개됐으며, 교육봉사회가 창설되고 다양한 교육 사업이 진행됐다. 선교왕 시상식 등을 통해 복음화 열기를 고조시키는데 일조했으며, 아나바다운동 등 다양한 대사회 캠페인도 활발히 전개했다. 가톨릭사진가회(1999년), 노인대학연합회(1999년), 가톨릭미술가회(2000년) 등 많은 가톨릭 제 단체들도 붐을 이루듯 창단했다.
한번 불 당겨진 교구 평협의 활기는 지금까지 사그러들이 않고 있다. 15대 양철화(요셉) 회장, 16~17대 안병철(도미니코) 회장을 이어 현 18대 정태경(마티아) 회장단으로 이어오는 2000년대는 고 김남수 주교의 선종, 이용훈 보좌주교 및 부주교 서임, 대리구제 도입 등 교구 사목환경이 급변하던 시기였다.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른 교구 인프라 확충의 노력도 필요했다. 대리구제도가 시행됐고, 이에 따른 평협의 대대적인 구조개편도 이뤄졌다. 이에 평협은 복음화 운동, 새날 새삶 운동, 장기기증 운동, 헌혈 캠페인, 공명선거 캠페인 등을 통해 교구의 복음화 노력에 일조해 왔다. 생명수호, 사회복지, 환경 등 대사회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40주년 기념미사에서 문희종 복음화국장 신부는 강론을 통해 “평신도가 교회의 중심, 복음화 주체가 되어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며 교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신부의 강론은 평협의 꿈, 평협의 희망과 맞닿아 있다.
이제 40년 불혹(不惑)을 넘은 평협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그 1차적 목적지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50주년이다.
“교구 발전·복음화 중심은 평신도”
◆ 평협 설립 40주년 기념 미사 강론(요지)
40년 평협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교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수원교구가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이 지역 사회의 복음화는 평협의 놀라운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교구가 이룩한 발전상의 중심에는 평신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협 40주년을 지내는 올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면서 또다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세상 종말까지 끊어질 수 없다.
교회의 사명은 평신도의 사명이다. 평신도 교령 2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그 활동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를 분명하며 증언하며 인간 구원에 봉사한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바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다.”
평신도 교령 7항에서는 또 이렇게 언급한다. “평신도는 현세 질서의 개선을 고유 임무로 받아들이고, 그 질서 안에서 복음의 빛과 교회 정신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확고하게 바로 행동하여야 한다. 평신도는 시민으로서 전문 지식과 고유한 책임감을 지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어디서나 모든 일에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 현세 질서는 그 고유 법칙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 높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리에 맞게 그리고 다양한 시대, 장소, 민족의 상황에 알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평협은 복음화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천주교 신자 수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신자 증가율은 더디게 올라가고 있는 반면, 쉬는 신자는 늘어나고, 청년 신자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지금 사회는 경제 지상주의 논리에 의해서 참 진리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 생명경시 등 윤리적 문제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실업, 가정, 환경, 사회정의 문제 등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아직도 산적해 있다.
지금까지 평협이 앞장서서 신자 공동체와 지역 사회의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왔듯이, 앞으로 교구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복음적 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문희종 복음화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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