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기 주교 재임 13년. 그 끝자락에서 바라본 수원교구는 이제 막 애벌레가 껍질을 깨고 나와 나비가 되는 형상이다. 복음화율 증가, 교구 인프라 확충 등 모든 면에 있어서 그렇다.
최 주교는 특히 교구를 굴러가게 할 두 바퀴로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선택했다. 이 수레를 이끌어 가는 6마리 말이 바로 6개 대리구이고, 마차를 끌어가는 마부가 ‘성가정’이다.
이 성가정 마부가 이끄는 수레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최덕기 주교는 그 지향점으로 늘‘가정 성화를 바탕으로한 이 땅의 복음화’와 ‘하느님 나라 건설’을 강조했다. 특히 최 주교는 자주 “하느님 나라 건설을 ‘지역사회에서’ 하자”고 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의 장이 바로 ‘지금 여기’인 것이다.
▨ 복음화율
최덕기 주교 재임 기간 늘어난 신자 수는 무려 30만명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수원교구의 이같은 급속한 신자 수 증가 원인으로 ‘신도시 개발’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 시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인구대비 신자비율을 보면 2002년 8.87% 이던 것이 2003년 9.29%, 2004년 9.37%, 2005년 9.58%, 2006년 9.73%로 꾸준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인구대비 신자비율의 증가는 수원교구 신자 증가가 단순히 신도시 개발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통계는 신도시로 유입되는 인구 중 천주교 신자가 유난히 많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 한, 신도시 개발과 신자 수 증가를 단순 등식화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수원교구 신자 수 증가는 최 주교의 리더십에 따른 교구의 역동성, 선교 열기, 소공동체의 활성화 등 다양한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 시노두스
최덕기 주교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이끈 수원교구 시노두스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일반적으로 ‘시노드’는 교구 전체의 모든 문제점을 망라해 논의하고 그 대안을 다루는 것인데 최 주교는 ‘구역·반 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라는 두 가지 의제에만 초점을 맞췄다. 수원교구 시노두스의 또 다른 특징은 최종문헌이 단순히 신학적인 이론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지침서’및 ‘참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시노두스 실현에 대한 당시 교구장 최덕기 주교의 강한 의지가 투영돼 있다. 최 주교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실천하지 않는 시노두스는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최 주교의 의지는 “단촐한 시노두스 결과문을 가지고 교구 전체가 집중력 있게 구현시켜 나아가야 한다”는 최종문헌 문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결국 시노두스가 두 가지 의제에만 집중함으로써 만족할만한 ‘교구 만의’ 사목 대안들을 마련할 수 있었고 또한 실현 가능성도 높였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당시 일부에서는 구역반 공동체와 청소년 문제만 해결한다고 해서 교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최 주교는 최종문헌에서 “구역·반 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의 활성화가 이뤄지면 수원교구는 앞으로 더 큰 문제들도 쉽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 주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시노두스의 성공적인 구현은 수원교구가 다른 많은 일들도 이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고 따라서 수원교구에는 희망찬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교구민 모두가 장기간에 걸쳐 결의하여 만들었고, 교구가 의지를 가지고 정책적으로 펼치는 일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교구는 더 이상 어떤 것도 교구적으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겠다.”
▨ 대리구제
2006년 최덕기 주교가 대리구 체제 도입을 선언하고 6개 대리구장 신부를 임명했을 당시, 교구민들은 이를 하나의 ‘큰 변화’로 받아 들였다. 물론 대리구 제도는 최 주교가 밝혔듯이 “교회법적 규정에 따른 것”일 뿐 새로운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리구장 신부가 실질적으로 대리구 사제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또 견진 등 교구장 권한이 대폭 이양 된다는 점에서, 대리구제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개념이었다.
특히 지역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목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이와 관련 교구 사제들은 ‘대리구 체제’가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우선 교구청과 대리구의 유기적 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선교 및 쉬는 신자, 가정 사목에 대한 배려 또한 대리구 차원에서 강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리구 체제 이후 대리구 사제단이 다양한 행사 등을 통해 일체성을 높였다는 점이 가장 돋보인다. 신자들의 활동 폭도 넓어 졌다. 대리구별로 평협 조직의 틀이 갖춰졌으며 청년 미사 등 각종 활동 신심 단체의 대리구 차원 연대 또한 강화되고 있다. 교구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를 향한 ‘첫발’이 최 주교의 대리구제 도입 의지로 가능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은 이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소공동체 활성화
최덕기 주교는 시노두스를 마치며, ‘소공동체’를 신앙생활 활성화의 방편으로 제시했다. 최 주교는 시노두스 최종문헌 글 첫머리에서 “시대의 요구와 징표들을 직시하면서 구역반 공동체 활성화를 통하여 세상의 복음화와 공동체의 복음화를 이루려고 한다”고 명시했다. 최 주교는 단순히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선언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최 주교는 최종문헌을 통해 구역반 공동체 봉사자의 자격에서부터 임기, 포상규정, 교류방안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 또 시행 세칙은 교구와 지구, 본당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을 구분해 문서화 함으로써 구역반 공동체에 대한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과거 수원교구 일선 본당에 있어서 소공동체 운동은 ‘선택 사항’이었지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 주교는 이제 그 선택을 의무로 바꾸어 놓았다. 소공동체 운동이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운동이 아니라, 급변하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희망’이 된 것이다.
▨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
수원교구에 가면 평신도 사도직이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원교구 평신도 사도직 활동은 유명하다. 미리내성지 인근 골프장 건설 반대를 위한 교구 환경연합의 활동에서부터 교회 내 복음화 활동에 이르기까지 평신도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수원교구는 특히 검증된 평신도 지도자를 교구가 직접 양성하고 조직화해 평신도 교육의 전면에 나서도록 했다. ▲성경봉사자회 ▲소공동체 봉사자회 ▲선교봉사자회 ▲가정 복음화 연구 봉사자회를 중심으로 복음화 봉사자를 양성, 본당에 파견 교육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교구가 직접 선교와 소공동체, 성경 전문가를 모집, 양성, 조직화해 일선 본당에 파견하는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
이 같은 교구의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교구의 전폭적 지지는 ‘평신도들의 자발적 교육열기→봉사의욕 고취→격려→신뢰에 걸맞는 높은 수준의 평신도 사도직 실현→신뢰’라는 선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 기타
최덕기 주교 재임 기간, 수원교구의 사회사목활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수 년 년전만해도 10~20개소에 불과하던 교구 인준 사회복지시설이 벌써 100개소를 넘어섰다. 직영 복지관만 6개소. 복지 분야도 장애인, 여성, 의료, 노인, 행려인 등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헌혈 운동 등 대사회 나눔 운동도 활발하다.
최덕기 주교의 땀을 이야기할 때 성지개발을 빼놓을 수 없다. 수원교회사연구소 설립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으며, 새로이 요당리 성지 개발에 착수하는 등 신앙 선조들의 신심을 따르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어농, 양근, 수리산 성지 등 기존 성지들도 차별화 및 성전건립, 성지 개발을 위해서도 많은 땀을 흘렸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를 창간하고, 교구 명예기자단을 출범시키는 등 홍보 활동 또한 크게 강화한 것도 최 주교의 12년을 돌아보면서 빠트릴 수 없는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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