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당에나 특색 있는 성물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자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성물·성화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가톨릭신문은 창간 82주년을 기념해 전국 성당과 성지의 성물을 찾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기획, ‘가톨릭 성물이야기’를 마련한다. 작가의 신앙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첫 순서로 고(故) 우석 장발(루도비코, 1901~2001) 선생의 성화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1928~1929)와 ‘성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1925)를 소개한다.
현재 절두산순교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두 작품은 한국교회 최초 성화가이자 서울대 미대 초대 학장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장발 선생은 두 작품을 통해 사실적이고 단정하며 소박하면서도 성화다운 성화의 모범을 선보였다. 이러한 모범은 한국 가톨릭 미술가들이 성물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기초가 됐다.
두 작품은 장발 선생이 1925년 로마에서 열린 ‘조선 79위 순교 복자 시복식’에 참관한 후 제작됐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형님인 장면 박사와 함께 복자 시복식에 참석한 장발 선생이 그곳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전신상으로 그린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는 엄격한 좌우대칭의 자세와 엄숙한 표정 등의 보이론적 특징이 가장 뚜렷하게 반영된 완숙한 경지의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지는 벽화적 단순성과 중후감보다는 회화적인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장발 선생은 이 작품 전후로도 김대건 신부의 초상을 자주 그렸다. 1920년에 그린 ‘김대건 신부상’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장발 선생의 작품 중 가장 초기 작품이자 김대건 신부를 그린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1987년에 다시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한복 입은 김대건 신부 대신 짧은 머리에 현대적인 느낌으로 새롭게 표현돼 있다.
‘성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는 유럽 성화의 전형적인 도상형식을 따르고자 했다. 엄격한 초월성과 절제미를 드러내고 있으며 보이론 미술에 심취했던 장발 선생의 화풍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두 자매의 얼굴은 현실성과 초월적인 신비로움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으며 의상은 투박하고 평면적인 벽화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성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는 장발 선생이 특히 좋아하는 소재였다. 1940년 평양의 서포성모회 수녀원에 ‘복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 치명’이라는 작품을 그린 바 있다. 또한 1989년에는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를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꽃들이 가득한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두 자매의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와 있는 순교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톨릭미술의 길을 마련한 장발 선생은 성미술의 토착화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 성화가로서 누구의 작품을 모방할 수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장발 선생의 제자였던 최종태 교수는 “국제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셨기에 성미술의 토착화도 이끌어내실 수 있었던 것”이라며 “실력있는 미술가들이 교회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셨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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