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민락본당(주임 백성환 신부) 사무실로 한 할머니가 들어섰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이면서도 늘 성당에 나와 레지오, 군종후원회, 연도회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김두리(아가타·80·민락본당) 할머니였다. 김씨는 사무장에게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네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봉투 안에는 1000만 원이 들어있었다.
“나한테는 전재산이라도 남들한테는 적은 액수일텐데 뭘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냐”며 손사래를 치는 김씨를 설득해 사연을 들어봤다.
가난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던 김씨의 남편이 당뇨 합병증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 14년 전. 평생을 믿고 따랐던 남편이 떠난 후 김씨 곁에는 힘이 되어줄 자녀도, 재산도 아무 것도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지급되는 돈 30여 만원 남짓과 본당 사회복지회에서 지급되는 돈 6만원이 김씨의 생활비 전부였다. ‘풍족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 하지만 김씨는 이 돈을 아끼고 또 아껴썼다.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필요한 거 안 사고” 10년을 넘게 모은 돈이 1000만 원이었다.
“TV를 보고 주변을 봐도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어요. 나처럼 자식도 없이 외롭게 살다가 병까지 얻은 사람들도 많고…. 그냥 그런 사람들한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푼 두푼 모았지.”
30여 년 전, 그저 마음이 끌려서 시작한 신앙생활이 이제는 김씨 생활의 전부가 됐다. 가난한 살림에 한글도 배우지 못했지만 성당을 찾아가 그저 남들이 일러주는 기도문을 따라 입으로 외우기를 수차례, 그렇게 교리를 배우고 미사에 참례해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신앙생활 덕분에 외로움도 잊고 즐겁게 감사하며 살기에 망설임없이 성당에 기부했다는 김씨.
주임 백신부는 “본당 사회복지분과에서 매달 돈을 지급하는 대상자인데, 그 분이 돈을 기부하고 갔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사실 당황했었다”면서 “할머니가 얼마나 아껴서 모은 돈인지를 알고 나서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사순의 참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민락본당은 김씨가 기부한 금액 전액을 지역 동사무소와 연계해 지역 불우 이웃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