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意味)라는 말이 있다.
말이나 글이 지니는 뜻으로 내용, 또 그 의도, 동기, 이유 따위 등을 말한다. 우리 삶에서 이 ‘의미’만큼 중요한 화두(話頭)가 또 있을까. 의미를 찾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해진다. 공부하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학생은 공부를 잘할 수 없다. 일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성직자는 그 영성이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의미 체험을 해야 인생도 행복해진다. 문제는 우리는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그 의미가 주위에 널려 있음에도 주워 담지 못한다는데 있다. 보는 눈이 없어서 보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다 더 나은 순간들을 맞이할 때에, 그 모든 것의 배후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 하느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의미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그 실마리는 우리의 삶 순간순간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삶의 매 순간을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라고 가정해 보자. 삶의 모자이크 조각들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형 모자이크 그림 속으로 들어갈 것들이다. 모자이크 한 조각만 보면 우리는 전체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다. 모자이크 조각들이 모두 모아질 때 진정 아름다운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일상이 매순간의 의미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면 모자이크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그 그림은 먹칠을 한,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한 조각 한 조각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그림이 망쳐지게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매 순간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림(나의 삶)은 엉망이 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내리는 삶에 대한 지침은 하루에도 수백번씩 다가온다. 우리는 부딪히는 일상 속에서, 그리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지하철에서 읽는 책 속에서, 심지어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삶의 위기 속에서조차 하느님에 의해 전달되는 지시와 지침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들을 나는 초월적 위기(Transcen dence Crisis)라고 부른다고 했다. 위기면 위기지 왜 초월적 위기일까. 내가 겪는 삶의 위기는 하느님께서 나의 평생을 두고 짜고 계신 살아있는 융단의 일부를 이룬다. 지금 나의 위기를 통해 하느님은 바느질을 한 번 하신다. 나는 지금의 바느질 한 번으로 나중에 어떤 융단이 태어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하느님께서 나의 삶을 아름다운 융단으로 짜고 계시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드러나는 어떤 사건보다 더 큰 어떤 계획이 있음을 믿고 따라야 한다. 나의 삶이 어떤 아름다운 융단으로 만들어질 지는 나중에서야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은 알 수 없다. 이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또 스스로 짜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모든 사건, 모든 만남 속에서 하느님의 뜻안에서 “예!”하고 말하고 감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아주 조금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방해되는 속세적인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근심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을 비방하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 사건과 대화를 통해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사정의 칼날을 겨누어야 한다. 나 자신의 판단, 사고, 주관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늘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용한 성당 안에서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옭아매는 것들에서 벗어나 보자. 그러면 오늘 아침 식사시간에 말씀하신 하느님의 음성,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전하신 내용, 힘든 일을 통해 부탁하신 지시, 책 속에서 말씀하신 지침 등이 모두 귀에 들릴 것이다. 그 음성을 들으면 곧바로 이렇게 크게 대답해야 한다. “예! 당신을 드러 내겠습니다. 신비를 비추어 내겠습니다.
-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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