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사용되는 도구의 본질과 아름다움이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아 주며 미사의 성스러움을 드러내야 한다”(미사경본의 총지침 257항)
성물은 신상 자체를 섬길 목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의 다양한 진리를 깨닫고 묵상하도록 정신과 마음을 들어 높이려는 의도에서 생겨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체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물은 실용을 넘어 종교적 체험으로 이끄는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작가가 지닌 각기 다른 시각과 체험을 통해 표현되는 성물은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런 점에서 공예가 고(故) 이순석(바오로·1905~1986) 선생의 성미술 작품들은 신앙의 대상으로 기능을 다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돼 있다.
이순석 선생은 자신이 다니던 본당마다 작품을 남겼다. 서울 중림동과 후암동, 청담동성당에서는 아직도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가톨릭성물이야기’에서는 청담동성당의 ‘성 유대철 베드로’ 부조석상을 소개한다.
작품은 한 손에는 ‘천주’라는 글자가 보이는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성인의 순교를 상징하는 칼을 들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아래에 보이는 별을 따르고 있는 형상이다. 배경에는 한국교회 103위 순교성인들을 상징하는 103송이의 무궁화와 휘광이 새겨져 있다.
작가가 순교성인 중 가장 어린 성인인 유대철 베드로를 석상의 주제로 삼은 것은 본당 주보성인이기 때문이다. 청담동본당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지역에서 가장 활력 있고 중심으로 위치할 성당이 되기 위해 성 유대철 베드로를 주보성인으로 택했다. 이 선생은 어린 성인의 모습이 새겨진 거대한 돌을 성당 마당에 세워 성당에 오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풍요로워 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순석 선생의 후기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부조석상 작품에는 또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작품에 사용된 돌이 작품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1982년 성전증축공사를 하면서 터에서 나온 돌을 사용했다. 환경에 조화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이선생의 작품관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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