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일곱 꽃다운 나이, 한국 남자와의 결혼식에서 김 버지니아 페레다씨는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기쁨과 희망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4년 뒤, 마흔한 살 버지니아씨의 얼굴은 5cm가 넘는 뇌종양의 무게로 짓눌린 채 고통의 눈물을 쏟고 있다.
필리핀이 고향인 버지니아씨는 슬하에 중2 아들을 둔 결혼 14년차 주부다. ‘너는 내 운명이다’는 한국 남자의 끈질긴 구애에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결혼했지만, 남편을 따라 온 한국에서 그녀는 다문화가정의 혹독한 현실을 맛보아야 했다. 하나뿐인 아들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배정받은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했고, 시가 식구들은 갈 곳 없는 그를 내쫓아 지금은 허름한 월세방에서 아들과 함께 힘겨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다. 지독한 가난과 고부갈등, 언어문제, 문화 차이로 인한 불행은 그녀의 머릿속에 암세포를 키웠다.
버지니아씨의 병세는 심각했다. 인터뷰 내내 구토증세가 심해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뇌 속 깊이 자리잡은 암세포는 급속도로 악화돼 5cm로 커졌다. 이미 후각을 잃었고, 몇 미터 앞도 분간 못할 정도로 시력도 나빠졌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부축 없이는 잘 걷지도 못하는 그녀는 수술이 시급함에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의 급식비와 다달이 30만원 월세를 내기도 버거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믿었던 남편은 사기를 당하고 변변치 못한 직장을 전전하다 최근에는 그 일자리마저도 잃었다. 중학생 아들 얘기를 꺼내자 금새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아이가 한국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말이 서툴고,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어 하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버지니아씨는 죽음이 두렵고, 살아갈 일이 막막할 때면 성당에 가 조용히 주님을 부른다고 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 한 때 남편을 만나 꿈꿨던 단란한 가정의 행복…. 다시 삶의 희망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봄은 아직 멀기만하다. 남편이 직장을 구하기만을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암세포의 전이속도가 너무 빠르다. 한시라도 빨리 입원을 해 수술을 받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도 설마 주님이 자신을 완전히 저버리기야 하시겠냐며 쓸쓸히 돌아섰다. 풀이 죽은 채 컴컴한 복도로 나가는 버지니아씨의 발걸음이 흔들린다.
※도움 주실 분 우리은행 702-04-107874 농협 703-01-360450 (주)가톨릭신문사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