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앉아 성경을 쓰면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기뻐요. 죽는 날까지 쓰게 될 것 같아요”
팔순을 넘긴 고령인데도 수줍게 말을 꺼내는 부산 덕계본당(주임 김형길 신부)의 김학선(데레사·82) 할머니.
김 할머니가 처음 성경 필사를 시작한 것은 1997년. 당시 지극히 효자였던 둘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예고없는 불행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였다. 모든 것이 낯설며 부질없게 느껴지고 온통 죽은 아들 생각뿐이었다. 그때부터 성경에 매달리면서 서서히 마음의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잡념도 사라지고 기분도 좋아졌어요. 내 안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지요.”
사실 김씨는 5년 전 구강암으로 수술을 받은 뒤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죽이나 우유 등으로 끼니를 떼웠다. 게다가 얼마전 넘어져 엉덩이와 허벅지를 다쳐 아직도 걷지 못할만큼 몸이 불편한 상태이다.
“성경 필사 이후 시력도 좋아졌으며 하루종일 앉아 필사를 해도 팔,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지도 않아요. 참으로 주님의 은총이 많답니다.”
김씨의 성경 필사는 한줄 한줄 자를 대어가며 써 내려가 얼핏 인쇄한 것처럼 보일 정도. 지난 3월 22일 교중미사때 제본된 9번째 필사본과 금묵주반지를 수여 받았다. 1997년 서울 답십리 성당에서 신·구약 첫 완필한 김씨는 현재 10번째 성경 필사를 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지치지 않는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김씨는 불편한 몸이지만 매일미사는 빠지지 않으며 매주 금요일 밤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양산 영성의집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다음날 새벽에 돌아오는 등 신앙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김형길 주임신부는 “자매님 혼자만의 보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이자 감사할 일이라 여겨 그 고마움을 표시했을 뿐이다”면서 “다른 분들도 평생에 한번은 꼭 하느님 말씀을 쓰면서 남다른 체험을 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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