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의 원천을 알기 ▲우리의 마음을 알기 ▲삶-생명에 귀 기울이기▲언제나 ‘예!’라고 말하기 등에 대해서 말했다. 이제 앞으로는 ▲신비를 비추어내는 문제에 대해 함께 성찰해 보기로 한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성찰하고, 그러기에 마음을 열고, 삶과 생명에 귀를 기울이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영성은 일단 내면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신비를 세상에 비추어 낼 수 없다면 그 영성은 껍데기일 수 밖에 없다. 신비를 세상에 비추어 내지 않는 영성은 거짓 영성이다. 영성의 향기를 내지 않는 영성가는 있을 수 없다.
이제 그 첫 작업을 하려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가 신비, 은총, 섭리, 초대 등에 대해 진정한 동의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 작업이 바로 이러한 노력들이었다. 다시한번 하느님의 사랑을 되돌아 보며 묵상해 보자.
하느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묵상을 하다보면 살아있는 엄청난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문득 문득 놀라곤 한다. 신비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사랑의 뜨거움이 느껴진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하고 말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 때문이다.
“예!”는 하느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의 현존을 체험하지 못하면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예!”라고 말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말과 같다. 사랑의 열매인 평화와 기쁨도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모든 것이 은총이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감사와 존경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 은총과 함께 이 은총을 받아들이는 인간 자유의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 은총을 동급으로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은총을 강조한다고 해서 자유의지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은총이 월등한 것이고 그 다음에 인간 자유의지가 뒤따라가는 보조적 역할로서 중요하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이 은총(하느님의 신비, 형성적 신비)을 비추어 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의 ‘실제적 삶의 형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의 실제적 삶은 세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외향형태다. 외모, 체중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가 정신적인 형태이고, 마지막 차원이 영적인 차원, 핵심적인 형태다. 인간의 실제적 삶의 형태는 이 세 가지가 종합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실제적 삶의 형태가 세가지 차원에서 함께 그리스도의 형태로 변화되어갈 때, 사랑 깊은 초대에 응할 때, 매일 내면으로부터 주어지는 지침들에게 순명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삶의 형태로 조율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영성생활이다. 나의 의식차원을, 지난 과거부터 살아왔던 모든 삶을 다 초월적 의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외적인 사랑실천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선교 운동을 통해 많은 신자들을 성당으로 불러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나의 내면, 나의 의식을 어떻게 하느님의 뜻에 합치될 수 있도록 바꾸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대부분 인간적인 해석을 하고 인간적인 결론을 내리고, 인간적인 대응을 한다. 영적인 해석을 하고, 영적인 결론을 내리고, 영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 만물이, 오늘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은총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잊고 싶었던 과거의 나쁜 기억들도 깨닫음의 은총으로 다시 살아난다.
더 나아가 우리는 결국에는 은총을 통해서 신비를 비추어 내는 인격들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신비를 단순히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이 세상에 그 은총을 비추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삼위일체의 사랑을 비추어 주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의 내면이 그리스도의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하느님 신비를 비추어 낸다는 것은 특별한 연설을 통해, 피정 지도를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내면에서 그리스도의 형태로 바뀔 때, 그리스도는 세상에 비추이게 된다. 나의 모습과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공현시키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 말씀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자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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