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전례를 통해 두 개의 복음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는 미사 전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 때 듣는 복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사때 듣게 되는 수난복음입니다. 이 둘은 그 길이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나지만 그 내용의 분위기도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호산나!" 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호하던 군중의 그 기쁨과 애정의 분위기가,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라는 저주와 광란의 분위기로 반전 (反轉) 되며, 또 정의 - 평화의 왕께서 고통과 처절한 가시관의 죄인으로 급전 (急轉)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성부 (聖父)의 뜻에 순종하셔서 그 일들을 다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 사건 안에서 인간이 행한 처사가 너무나 "경솔하고 우매했다" 는 생각이 쉽게 떨쳐지지가 않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해방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아를,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줄 그런 정치적/군사적 영웅으로만 기대한 것이 착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세상의 물리적 고통을 제거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은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친히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심으로써 그것을 통해 인간을 영원한 평화와 복락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크고 힘센 군마 (軍馬)가 아니라 작고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 (入城) 하심으로 "참 평화"를 암시해 주셨고 또 하느님의 구원계획를 기억하도록 해주셨습니다 :
"수도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너를 찾아오신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어…. 뭇 민족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즈가리야 9, 9~10).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겉옷과 올리브/빨마가지를 길에 깔아놓고 그 가지들을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환호하던 사람들이, 그리 쉽게 예수님을 "십자가의 죄인" 으로 고발하는 인정없고 폭력적인 무리로 변해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득, 오늘날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거룩하시다!" 를 외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거룩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좦하며,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 성녀와 함께 장엄하게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호산나!" 곧, 좥구원해 주소서!』라며 간청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 기도와 노래 안에 얼마만큼이나 하느님/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감사, 열정이 담겨져 있는지?….
옛날 예루살렘 시민들이 착각 속에 "호산나!" 를 외쳤듯이, 오늘날의 우리들은 뜻 모를 빈 말의 "호산나!" 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한 영적 스승이 계셨습니다. 성덕이 출중하신 분이라 사람들은 영적으로든 육신적으로든 어려움이 닥치기만 하면 언제나 이 스승을 찾아와 조언을 구했고 기도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기도를 해주면 모든 문제가 다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뭄이 심해 비를 내려달라고 하니 비 대신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환자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자 도리어 환자가 금방 죽어버리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화가 나 이 스승에게 욕을 했고 그를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하느님께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 "전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왜 반대로 들어주시는 것입니까?"…. 그때 이런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 "아들아! 너는 항상, 네가 겸손할 수 있게 해달라고도 기도하지 않았니?"…. 입으로는 "겸손, 겸손" 하고 또 하느님께 그것을 늘 구하면서 산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 새 "빈말"로 전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호산나!" 를 외치고 있고 또 회개와 나눔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실천과 열매없는 "빈 말, 빈 생각" 에만 그쳐있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것, 이런 것이 회개일 것입니다….
오늘의 긴 수난복음, "이것이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없이 잘 들으실 수 있어야 겠습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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