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톨릭 지성인 가운데 「나가이 다카시(1908~1951)」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나가사키 의대의 교수 겸 의사였으며, 백혈병 환자요 원폭(原爆) 피해자였습니다. 특히 신앙인으로서의 맑은 삶과 그것을 담은 글들로, 패전의 여파로 황폐해져 있던 전후(戰後)일본의 정신세계에 신선한 힘을 불러일으킨 분이십니다. 그분의 글들은 「묵주알」 「영원한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도 번역이 돼 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신앙과 참 삶의 진수(眞髓)를 가득 담고 있는 글들입니다.
그중 「묵주알」이라는 글을 보면, 백혈병을 앓고 있던 자신과 그런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아내와의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야기가 아주 애잔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그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해 쓰러진 나가이 박사는 아내의 죽음을 예감합니다. 왜냐 하면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1㎞밖에 되지 않았기에, 만약 아내가 죽지만 않았다면 설사 큰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기어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안부를 알고자 찾아올 것인데 그러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구호의 일을 웬만큼 마치고 사흘 뒤에 집에 가보니, 예상대로 아내는 부엌 뒤쪽에 「타다 남은 골반과 요추(腰椎)의 숯 덩이리」로 남아 있었고, 그 옆에는 십자가가 달린 묵주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타다 남은 아내」를 양동이에 담아 묻으러 가는데, 흔들리는 양동이 속에서 뼈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마치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당신 뼈를 안고 가야 했는데…」라는 소리로 들렸다고 합니다.
나가이 박사는 -적어도 인간적으로- 아내에게 빚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연구(硏究)에 한번 몰두해 빠지면 그외 세상일들은 다 잊어버리기에 모든 뒤치다꺼리 일들은 언제나 아내의 몫이었고, 아내는 그 모든 것을 참으로 잘 해주었던 것입니다. 백혈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남편을 위해 항상 밝은 모습으로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아픈 속마음을 별로 의식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헤어지는 날에야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됩니다 : 「1945년 8월8일 아침(이날은 나가이 박사의 학교 숙직날이고 다음날 원자폭탄이 투하됐기에 그들에게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의 출근을 전송해 주었다. 조금 가다가 나는 도시락을 잊고 나온 것을 깨닫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뜻하지 않게도 현관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그는 한 번도 아내가 자기 때문에 울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죽어가고 있는 남편을 보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몰래 울고 있던 아내의 마음을 잘 헤아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백혈병이라는 사형선고」에 대해 침착한 태도를 보이며 자기의 연구를 도와주고, 업어서까지 출근을 시켜주던 아내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을 뿐, 그 속마음은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쓸데없는 오해를 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내가 모르던 「그의 나에 대한 좋은 생각」도 알게 되어 그에게 감사하며 함께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세상 많은 사람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의 주인이시며 더욱이 자기를 위해 돌아가신 분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 날」에 와서야 「가슴을 찔러 아프게 한 일에 대해 슬퍼하며 곡을 하게 될 것(제1독서)」입니다.
신앙의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을 제대로 온전히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복음)」라는 고백을 온 마음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하느님이시고, 나를 위해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며,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사랑으로 나를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매순간 실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모셔드리며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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