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사람 -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日常) 가운데 밭을 갈고 있던 엘리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여, 자기 삶의 터전과 도구들을 다 버리고 홀연히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제1독서).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결단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제자됨의 조건에 비하면 엘리사의 이 경우는 차라리 인간적(?)이고 더 실현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엘리사에게는 부모님과 작별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비정(非情)하리만큼 단호한 것이었습니다. 「제자의 길은 영육으로 머리를 둘 곳조차 없을 정도로 힘들고 험난한 길이다!. 아버지의 장례마저도 그것은 죽은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당장 나를 따라나서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여라!. 길떠난다는 작별의 인사도 필요없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지 말아라!」(복음). 「예수님의 제자의 길」에는 이처럼 단호한 믿음의 결단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너무 어려워 웬만해서는 감히 응답하여 따를 수 없을 것 같은 이 「제자의 길」!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가 지금 「하느님의 사람 -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있다니!. 사실 우리는 어느 모로 보나 저 큰 결단을 내리기에는 별로 선하지도 의롭지도 용감하지도 못한 사람들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부르심의 길을 걷고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 것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고 당신을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돌아가는 부자청년의 뒷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역시 옳으셨습니다.: 「그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부르심에 대해 결단하고 응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르시는 분」의 은총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지금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녀, 예수님의 「참」제자로 제대로 살고 있습니까? 부르심을 받기에 너무나 부당한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지금의 나의 모습 역시 아직도 그 제자에게 맞갖은 삶에 비해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제대로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제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107?)께서는 「나는 이제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맹수에게 던져지는 형(刑)을 선고받고 로마로 압송되시면서 그 기간 중에 여러 교회에 7통의 편지를 쓰셨는데, 이 편지들에서 성인께서는 「자신은 하느님의 밀알로서, 이제 맹수의 이에 갈려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되는 것이므로, 절대로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救命運動)같은 것을 함으로써 이 귀한 기회가 헛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간청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해 선택한 그 죽음을 통해 「비로소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죽이는 일」, 하느님 나라와 그 백성인 이웃들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일」, 이것이 오늘을 사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일입니다. 이미 부르심을 받고 결단을 내려 그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우리에게 「참 제자됨」을 위한 부르심과 결단은 매순간 계속되고 또 요구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결단의 응답 역시, 맨 처음에 그러했듯이 오늘 이 순간에도 「부르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협조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 분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제2독서).
하느님의 사람, 예수님의 참 제자에로의 부르심에 대한 이 끊임없는 결단의 삶은, 이 세상에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결국 하느님의 나라에서 풍성한 결실로 완성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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