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로마 박해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 한 젊은 어머니가 순교를 당하기 위해 원형경기장에 끌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대여섯 살 정도의 어린 딸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 어린 것이 도무지 엄마를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또 다른 가족들은 이미 다 순교를 한 터라 그가 이 세상에 홀로 남아 고생하며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함께 순교를 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리 함께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경기장 한가운데 세워져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경기장 한쪽 우리에서는 굶주린 맹수들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포효하며 날뛰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무서워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어린 딸을 꼭 안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무섭지? 눈을 꼭 감고 엄마 품에 얼굴을 묻으렴. 조금 후면 천국에서 예수님을 뵙게 될 꺼야!」
맹수가 우리에서 달려나와 이들에게 당도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고통의 긴 시간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두렵지만 두 눈을 꼭 감고 그 짧은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면, 맹수가 사람을 무는 순간 그는 정신을 잃게 되어 더 이상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고 그리고 눈을 뜨면 그곳은 영복의 하늘나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살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적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그렇고, 반대로 지독한 고통의 심연에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은 삶을 산다 해도 이 세상은 어차피 「잠시 지나가는 세상」인 것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과 여건들이 다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성실히 그것을 채우며 살아야 하지만, 결국 이 세상에서의 시간과 삶은 하늘나라라는 영원한 세상에 견주어 볼 때 너무 작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진리입니다. 순교자들은 이 진리를 잘 사신 분들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21~1846)의 축일을 지냅니다. 신부님의 생애는 참으로 간단명료했습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시어, 15세 어린나이에 마카오에 가셔서 역경 중에 10년간 「하느님의 법」을 익히셨고, 한국 최초의 사제로 수품되어 1년1개월의 짧은 기간동안 철저히 이 땅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셨고, 만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심으로써 그 피로 이 땅 신앙의 밭에 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에 그 꽃이 활짝 피었고 그 풍성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순교자들처럼 신부님께서는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배교하라!」는 관장에게 이렇게 담대히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받듭니다. 천주교는 내게 천주공경하기를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내게 배교하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입니다. 결코 나는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임금 위에 또 천주께서 계시어 당신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그를 배반함은 큰 죄악이라, 임금의 명령이라도 옳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서한23).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의 순교자들은 주어진 자신의 처지에서, 하느님을 향한 삶을 참으로 의롭게 살아들 가셨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 그 연세에? 그 처지에서 그리도 철저하게 신앙을 사실 수가 있으셨을까? 할 정도로 그분들의 삶은 숭고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분들께서도 「순교의 월계관을 쓰시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신앙인」들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말씀하시는 성령의 도우심」(복음)으로 모든 역경 가운데서도 「평화, 인내, 희망, 기쁨」(제2독서)의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잠시 지나가는 이 세속보다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려는 회개의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우리가 월드컵축구에 보였던 그 관심!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졌다고 아쉬워했던 그런 열정의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느님 공경에 헌신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갑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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