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가정폭력과 그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에 대한 청취자의 편지글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부인이 딸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피까지 흘리고 있는데도 주위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하나 나서서 그것을 말리는 이가 없었고, 한바탕 소란이 끝난 후에도, 모녀가 흐르는 피를 닦으려고 휴지를 청하기 전까지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피를 닦으라고 휴지 한 장 주거나 상처를 봐주며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가정 일인데!」하면서 구경만 하는 세태에 분노마저 느꼈다고 했습니다. 물론 세상이 모두 다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계시는구나! 사람이라는 존재로 눈물 나도록 귀한 존재구나! 산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라는 벅찬 마음으로 가슴을 꽉 채워주는 좋은 일들이 무수히 많은 것이 또한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위 예(例)와 비슷한 상황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실천」이라는 생명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리고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하시며 그 구체적인 실천을 권고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사마리아사람은 당시 정통 유다인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은 이스라엘의 중부지역으로 본래 「에브라임」과 「므나쎄」지파에게 주어진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멸망될 때 북왕국에 속했던 사마리아지역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시리아로 끌려갔고(2열왕 17,6), 남은 사람들은 그곳에 유입된 이방인들과 혼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왕국 유다사람들은, 사마리아사람들이 원래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었지만 그들이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순결성을 잃었다 하여 사마리아사람들을 경멸하였고 원수로까지 생각 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이 야훼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동시에 이방인들의 우상숭배 풍습을 지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2열왕 17,41). 그런데 그들 눈에 이렇게 추하고 더러운 죄인인 사마리아 사람이 오늘, 의로움과 경건함의 극치로 여겨지던 정통사제와 레위사람보다 더 의로운 사람으로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사제와 레위사람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하느님사랑에 있어서는 외적으로 성실하게 보일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부상자를 못본척 지나쳐 가버렸던 것도 결국 피나 시신을 만져 부정을 타게 됨으로써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지장을 받고 싶지가 않아서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제사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시는 이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조금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민족만을 위한 소극적이고 편협한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웃」, 「너」라는 존재가 내가 나의 존재 전체를 다 기울여서 긍정할 수 있는 상대(相對)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존재 전체를 다 기울여 「너」를 긍정하는 행위가 사랑입니다. 너를 위하여 나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생각을 다하는 것」(루가 10, 27)이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귀한 너」로 인정해 주셨고, 당신의 목숨마저도 다 바쳐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사랑을 우리에게도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하느님 사랑만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내가 좋아하는 이웃」만을 위한 사랑을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사랑과 「모든」이웃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위에는 지금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매 맞고 고통당하는 이웃들이 너무 많습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하신 말씀을 실천할 때입니다. 그리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하느님께서 힘과 희망이 돼주실 것입니다 : 「이 법은 너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너희 입에 있고 너희 마음에 있어서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제1독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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