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광장에서 성년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이 우산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일단 우산을 편 후, 옆에 있던 동료 수녀님들께 전례거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비가 그치게 해주십사 성모님께 기도를 하자고 건의를 했습니다. 성모송을 바치는데 처음에는 빗발이 도리어 더 세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 여덟 번째를 하는 동안 우산이 하나둘씩 접혀지기 시작했고, 아홉번째 기도를 마칠 즈음에는 우리들만이 우산을 쓰고 있었습니다. 기도에 열중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지요」 (마더 데레사의 말씀중에서)
역시 「수녀님답다」라는 생각과 함께, 「비가 그때 우연히 그쳤을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게 무슨 꼭 기도 때문이었겠느냐?」고 쉽게 말해버릴 것만 같은 현대인들의 모습이 머리에 스쳐지나갔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하느님께서 사시기에 힘든(?)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나 신비, 그분께 대한 외경의 마음보다는 인간의 이성(理性)과 자유가 더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의 분위기가 확산돼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와 힘을 이용하여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야 함은 마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그분마저 인간의 조종대상으로 삼고 그분을 무시하고 그 자리에 인간 자신의 능력을 놓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능력과 효율과 실적만을 최고가치로 여기고, 특히 「삶의 질」을 경제라는 잣대로만 재려고 했던 그 어리석음의 결과를 현실의 고통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속에 대해 「그것이 아니오! 그것은 잘못된 것이오!」라고 분명하게 정의(正義)를 선포하고 먼저 실천을 해야 할 우리 신앙인들마저도, 개인의 삶이나 교회의 삶 가운데 그런 세속적 구태를 똑같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잘 대접함으로써 그것을 통해 그분을 섬겨드리려고 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데에만 열중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정성을 인정하시면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다 마음을 쓰며 걱정 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마르타와 마리아를 활동과 관상(기도)의 상징으로 쉽게 이분화시키는 것은 무리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과연 우리의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바른 인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현실을 보면, 「기도하는 사람」보다는 「활동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내적으로 기도하고 외적으로 그 결과를 이루는 참 신앙을 사는 사람」보다는 「외적으로만 기도하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나 외적 성장, 또는 「울리는 꽹과리」와도 같은 활동모습을 보고 그것을 「성공」이고 「열심」이라고 쉽게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래성의 몰락」과 똑같은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를 무서운 영적착각 내지는 자기도취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와 활동은 절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하나의 신앙행위입니다. 봉쇄수도자의 관상생활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도 온전히 하느님만을 생각하고 그분과 일치하는 관상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힘과 지혜를 받아 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처럼 세상 모든 일에 앞서 먼저 하느님-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매 순간을 성실히 기도하듯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도와 활동이 하나가 된 올바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러할 때 기도로 시작된 모든 활동은 그분 안에서 꽃피고 풍성히 열매맺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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