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별로 반갑지 않은 우편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무인속도측정기에 제가 몰던 차가 과속으로 적발이 됐다는 통지서였습니다. 말로만 들어보았던 그 통지서에는 차 번호판과 운전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위반을 했으면 마땅히 그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그것을 보는 순간 기분이 그랬던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 때문에서였습니다. 사실 저는, 나라가 IMF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된 경제속도라는 것을 나름대로 잘 지켜온 터였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도 의식적으로 시속 90km 안팎을 유지하며 운행을 하곤 했는데, 그날 공교롭게도 서행하는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가속을 하다가 그만 그리된 것 같았습니다. 과속으로 인한 범칙금과 벌점보다는, 별 위반 없이 잘 쌓아온 탑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말씀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지녀야 할 기본마음자세」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제 아무리 애를 태우며 수고를 해 본들…」(제1독서) :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라.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오늘 밤 네 영혼이 너를 떠나간다면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복음) :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제2독서).
범칙금을 은행에 납부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처음 통지서를 받았을 때 느꼈던 그 마음 찜찜함도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기분도 이처럼 변하는 것인가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일」이 그때는 왜 그다지도 신경 쓰이게 했었던지…. 사실, 무인속도측정기가 있는 것을 몰랐던 것이 죄 아닌 죄(?)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평상시 규정속도를 성실히 지켰고 측정기 앞에서 억지로 속도를 줄이는 그런 약삭빠른 행동도 별로 하지 않았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위반딱지를 떼였음에 불쾌함을 느꼈던 것 역시 「다 헛되고 헛된 일」이었습니다. 평상시에 규칙을 잘 지켰음에 자긍심을 갖고 또 적발된 사실에 「억울하고 재수가 없었다」라고 생각함 없이 위반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 그만일 일이었습니다. 위반사실 그 자체나 그로 말미암아 순간적으로 가졌던 불쾌감은 사실 제 영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과속위반 스티커를 받았다는, 어찌보면 하찮은 사건을 통해서도 적게나마 마음의 동요가 있었을진대, 요즘같이 어려운 현실 가운데 돈과 직장, 가정과 건강, 사랑과 신용 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이세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그 상실감과 답답함, 절망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누가 그것을 위로해 주고 보상해 주고 그들을 다시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물질이나 세속적인 가치보다는 하느님나라와 영적인 가치가 더 귀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이 더욱 그 본분대로 열심히 살아야 할 때 입니다. 「하늘 아래 일」들을 「하늘 위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삶으로써 모범을 보이고,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 모두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 끝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지니고 누리고 있는 재산, 명예, 건강 등등의 것들이, 고통받는 이 세상의 많은이들을 향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라적으로 맞는 이야기입니다. 돈보다는 명예가, 명예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이육신의 건강보다 더 고귀한 것이 있음을 압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 천상의 것들입니다. 이 영적가치의 것들과 무관한 것이라면 「하늘 아래의 것」들은 결국 다 헛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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