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도 2,14a.36∼41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제2독서 Ⅰ베드 2,20b∼25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자이신 그분에게 돌아 왔습니다)
복 음 요한 10,1∼10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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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르심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비록 신부나 수녀가 되는 부르심이 아니라 해도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사람을 아무렇게나 부르시지는 않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을 적절하게 부르십니다. 예를 들어 누구는 바보로 태어나고 누구는 불구자로 태어납니다. 혹은 일찍 과부가 되기도 하고 또는 박해와 시련 속에 인생을 고달프게 걸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의 부르심도 하느님의 사랑을 떠나서는 존재되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는 바로 그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받는다 해도 참고 이겨나가는 데에 불리움을 받은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이 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집안 일이 바쁠 때 부모는 자녀들을 부르십니다. 힘들고 어려우니까 함께 거들라고 일을 시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밥도 제 때에 못 먹고 잠도 제 때에 못 자게 됩니다. 그러나 자녀의 바로 그 희생이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름은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자녀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바로 그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는 자신의 세속적인 어떤 목적을 위해서 성소의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가난과 순명과 정결 속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길을 역행하는 고난의 길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길이 저주받은 불행한 길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착한 목자에 대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고생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들에서 자주 밤을 새워야 하며 찬 비에 몸을 떨기도 하고 잃어버린 양이 있으면 며칠이고 밤낮으로 고생하며 찾아야 합니다. 늑대나 도적과도 싸워야 하며 병든 양을 찾아 치료도 해야 합니다. 목자는 실로 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생이 많을수록 착한 목자가 되며 나쁜 목자는 고생을 안 합니다. 자기만 편하게 지냅니다.
오늘의 세상에는 진정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땀흘리는 참된 봉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 제4주일을 '성소주일'로 정하여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할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성소는 특히 빛나는 은총이며 하느님이 믿고 기대하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본당에서 레지오 단장까지 하는 열심한 자매가 있었는데 당신의 큰 딸이 수녀원에 간다고 하니까 딸을 집에 감금시켜 놓고 "너 죽고 나 죽자"라고 협박을 하며 말렸습니다. 본당 수녀님이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니까 나중엔 성당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딸이 가고자 하는 수녀원에 찾아가서 대판 싸우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착각을 합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세속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을 찾아서 행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못먹고 못살아도 아버지의 말씀과 그 뜻 안에서 살려고 할 때 거기에 참 보람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지나갑니다. 부귀도 영화도 권력도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만은 영원히 살아서 기쁨의 꽃을 피우고 보람의 열매를 바라보게 됩니다. 따라서 신부나 수녀 되는 것이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것보다야 세속적으로 덜 재미가 있겠지만 그러나 하느님만이 주시는 참 기쁨과 행복은 더 크게 누리게 됩니다.
성소는 사실 별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별것도 아니면서 아주 위대하며, 아주 빛나는 은총이면서 또한 별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그랬습니다. 누구나 다 걸어갈 수 있는 길이면서 또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말이 이상하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가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학벌도 없고 인품이나 인격도 없었으며 오히려 성미가 급하고 충동적이라 진득하니 뭘 성사시킬 수 있는 인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무식하고 거칠었으며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모든 약점을 더 깊이 사랑하셔서 당신의 대리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마어마한 은총이 인간의 약함에서 드러납니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의 일꾼들을 간절하게 부르십니다. 당신의 목장에서 잠도 설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수고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부르십니다. 왜 부르십니까? 특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믿고 기대하시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의 협조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Ⅰ베드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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