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시절에 본 영화 중에 뮤직박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변호사인 딸이 아버지의 변호를 맡아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인데 딸은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가 나찌 치하에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악행을 일삼는 모습을 뮤직 박스에서 나오는 사진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딸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죄상을 세상에 폭로하면서 아버지를 고발하고 여행을 떠나 아들을 포옹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였다.
80년대 당시 이 영화를 보면서 어느 한편 아버지를 고발하는 딸의 행동이 너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공동선을 위해 혈연관계를 뛰어 넘는 딸의 행동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 물론 영화 속의 이야기를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사적 관계」를 「공적 관계」보다 우선하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여겨졌고, 사회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가족에 대한 상대화 정도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보여 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제자 됨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나 처자 그리고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해야 한다.
이 말씀은 몇 주전의 복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과 더불어 우리를 가장 당혹케 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가지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워하다」라는 말의 용례와 예수님이 가정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고찰해야 한다.
먼저 『미워하다』라는 말은 우리말의 용례와는 약간 차이가 난다. 예수님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기 때문에 「덜 사랑하다」는 표현을 자주 「미워하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이 말은 사랑에 대한 반대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최고의 사랑과 비교되는 의미에서의 사랑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족관계를 절대로 부정한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실질적인 효도와 부모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셨다. 물론 구원에 대한 긴급성 때문에 때로는 「혈연 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에 더 많은 강조 점을 두기도 하고, 때로는 오늘 복음과 같이 당신을 따름을 강조하기 위해 「혈연 관계」를 상대화하기도 하였지만 가족 관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밭을 사게 되는 보물의 비유를 기억하겠지만 여기서 「가지고 있는 재산」을 파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말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가족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어느 한 교파를 따르기 위해 가정의 붕괴도 감수해야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단순히 어느 한 종교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선」등 어느 한 종파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제자가 되기 위해 부모나 처자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가족 관계의 부정이 아니라 그 무엇도 예수님의 이상을 추종하는 삶에 우선할 수 없다는 신앙의 진리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십자가라는 말에 많은 의미를 부여 할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십자가는 사형에 처해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고통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각오한다는 결심과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즉 제자됨의 길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말씀 망대구축과 전쟁 수행의 이중 비유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주님을 따를 수 있는지 분별하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망대를 세우려면 경제력, 전쟁을 치르려면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듯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세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 재물에 대한 초월이 제자 됨의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재산」과 「가족」 그리고 「생명」까지고 포기할 수 있는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위에 예수님을 놓을 수 있는 차별적인 사랑만이 제자됨의 길이라는 것이다.
나의 생명과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재산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우선하는 삶! 불가능처럼 보이는 이러한 삶도 우리의 의지와 주님의 은총이 만날 때, 아마 그 자리에서는 가능할 것이리라 !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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