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신앙의 핵심인 순교신심을 되새기고 오늘의 교회를 있게 한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이번 행사는 200년 전 그날과 함께 한국교회의 귀중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앞두고 각 교구별로 이어져온 각종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행사는 이들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정점으로 하고 있다.
■ 순교자 후손으로 거듭나는 계기
『그리스도 신앙에 더 깊이 들어가기를 갈망하던 여러분의 선조들은 1784년에 자기들 중 한 사람을 북경으로 보냈고, 그는 거기서 영세하였습니다. 이 좋은 씨앗으로부터 한국에 첫 그리스도 공동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신도들 자신에 의해서만 세워졌다는 점에서 교회 역사상 유일한 공동체였습니다. 이 신생 교회는 아직 어리면서도 믿음에는 그토록 굳세어 몹시 사나운 군난을 거듭 거듭 견디어냈습니다. 그리하여 한 세기도 채 못되어 1만명을 헤아리는 순교자를 자랑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지난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03위 순교 복자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하면서 밝힌 한국교회에 대한 이같은 평가와 감동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신앙대회는 새로운 의미를 던져줄 만하다.
그것은 특히 신유박해 순교자들이 한국교회가 교회 역사상 최초로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연구와 노력에 의해 이룩된 교회, 주교나 사제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교구로 먼저 설정되고 주교와 선교사들이 파견된 교회라는 세계교회로부터의 칭송의 주역임에도 이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후손으로서 거듭남의 새로운 계기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아울러 이번 신앙대회는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유산을 거름 삼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의 후손들이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한국교회가 풀어야 하는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갈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장이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의해 103위 성인을 모시게 되었음에도 미처 준비되지 못한 가운데 맞이한 성인들에 대한 공경과 현양 작업은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한계로 남아왔다.
따라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행사는 한국교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 그리고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순교신심의 본질을 올바로 밝혀내는 길에서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이런 점에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은 분명 새 천년기에 한국교회를 위한 귀중한 이정표이자 순교자들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땅에 내려지는 은총의 선물인 셈이다.
■ 어떻게 치러지나
서울대교구 신자들을 비롯해 전국 각 교구의 본당 회장단,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모두 6만명 이상이 참가할 신앙대회는 묵주기도와 순교자 행렬 등으로 이어지는 제1부 「순교자의 향기·순교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제2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사제단이 공동집전할 「장엄미사」, 제3부 「순교자 유해 경배와 시복시성 청원기도」등 총3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서울대교구가 주최하고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와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관하는 이번 신앙대회는 한국교회의 뿌리이면서도 올바른 자리를 찾지 못해온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올바른 자리매김의 장으로 준비되고 있다.
특히 이 행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새로운 3000년기를 향한 대장정을 이미 200년전의 삶에서 보여준 이들이 바로 신유박해 순교자들임을 신자들의 마음에 심어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울러 신유박해 순교선조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정진석 대주교가 주례하는 장엄미사는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지향하며 봉헌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만 6만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신앙대회는 교구 내 전 본당이 순교자를 상징하는 깃발을 든 행진을 하는 것을 필두로 신앙 안에서 서로 화해하고 교회 쇄신을 위해 기도하는 장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새 천년기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순교적 삶을 본받고자 하는 신자 개인과 본당, 교구 등 모든 공동체의 다짐과 각오를 바치는 봉헌의 시간도 갖는 등 신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 그 어느 행사보다 활기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순교선열들의 정신을 함께 하기 위해 필리핀 남미 등에서 이주해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특별 초청, 함께 신앙고백을 할 예정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신앙체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박해 속에 핀 꽃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가 지난해 9월 20일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개최한 '신유박해 200주년 맞이 신앙대회' 한 장면.
행사를 주관하는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이번 대회가 일회성의 행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신앙공동체 가운데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9월 1일 신유박해 자료집인 「한국순교자연구」총서 출판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한 것을 시작으로 9월 20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70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절두산순교성지 광장에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맞이 신앙대회」를 봉헌하고, 올 초부터는 「교회사 인형 전시회」개최, 신앙교육과 문화의 광장으로 모습을 드러낼 절두산 순교자 교육관 기공(5월 26일), 황사영 백서 등이 선보이고 있는 「신앙의 향기 200년」전(8월 15일) 개막 등 일련의 행사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지난 8월 교구 내 각 본당 회장단과 행사 관계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차례에 걸쳐 신앙대회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세심한 준비를 해왔다.
■ 신자들의 참여 자세
「행사를 위한 행사」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가 신자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참관이나 참가 수준의 행사 참여가 주를 이뤘다면 이번 행사는 준비과정에서부터 자신의 신앙의 현재를 돌아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각 본당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도운동이나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하여 대회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이번 행사를 자신의 새로남의 계기로 맞이하겠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배갑진 신부는 『모쪼록 많은 이들이 신앙대회에 참가해 200년전 순교선조들이 남겨준 믿음의 결실을 확인하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진말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가 지난해 9월 20일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개최한 「신유박해 200주년 맞이 신앙대회」한 장면.
◆ 한국순교자현양위원장 배갑진 신부 인터뷰
“일회적 기념행사가 아닌 순교영성 얻는 기회돼야”
전국적 제2시복시성운동으로 이어지길
본당차원 순교자 성월 행사 뿌리내려야
▲ 배갑진 신부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기간의 돌입과 함께 불붙은 「순교자 영성」을 향한 여정의 대단원을 이룰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순교자현양 신앙대회」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 배갑진 신부는 이번 신앙대회가 신앙생활 쇄신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아울러 신자들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당부한다.
오는 9월 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펼쳐질 신앙대회가 신자들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일 뿐 아니라 새롭게 펼쳐질 신앙 여정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밝히는 배신부는 특히 이번 행사가 한국교회의 「신앙의 뿌리」를 찾아 현대인의 삶에 접목시키는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신앙대회가 신자 개인개인의 단순집합적 행사나 일회성 기념행사가 되어버린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교회의 거름과 씨앗이 된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향한 노력을 새롭게 지펴내는 계기가 되길』기원했다.
이번 신앙대회가 오늘을 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신앙선조들의 믿음과 삶을 만나게 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낸 배신부는 『아무리 건강한 씨앗이라도 황무지에 떨어지면 말라 죽듯이 신앙선조들이 남겨주신 굳건한 신앙도 그것을 받아들일 토양이 기름지지 못하면 제대로 자라나기 어렵다』며 영적 여정을 위한 신자들의 노력을 호소했다.
이를 위해 배 신부는 특별한 계기를 통한 순교신심 고양과 함께 일상생활에서 순교영성이 뿌리내릴 수 있는 다양한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믿음은 껍데기일 뿐인 신앙이라고 역설하는 그는 많은 신자들이 순간순간의 삶에서도 순교자적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유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신앙선조들의 삶과 만나고 시공을 뛰어넘어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증거할 때 자연스럽게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올 6월 21일 공식 활동에 들어간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현양위원회」위원장으로 시복시성운동의 한 축을 움직여가고 있는 배신부는 그간 이뤄져온 시복시성운동이 이번 대회를 통해 전국적인 「제2시복시성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맞길 바라는 희망도 피력했다.
특히 그는 103위 순교 성인을 모시고도 시들하기까지 한 오늘의 신앙 여정에 새로운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지역은 물론 교구를 뛰어 넘어 교회사학계, 신학계 등 각계 전문가는 물론 일반 신자 등 모든 신자들이 함께 하며 아래로부터 마음을 모아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행사로서가 아니라 문화로서, 교육으로서 일상적으로 순교신심을 접할 때 순교영성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배신부는 이같은 뜻을 살려 앞으로 순교자성월 행사가 본당에서부터 뿌리내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에서부터 상설적인 「순교자 현양축제」, 연극제 음악회 같은 「문화 마당」등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순교자에 대한 정당한 평가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고 있습니다. 신앙대회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아우르고 순교선조들에 대한 이해를 승화시킴으로써 순교자의 삶에서 드러나는 믿음과 희망, 사랑이 새 천년기 교회의 빛과 소금임을 확인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