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상)
1098년에서 1179년까지 힐데가르트가 살았던 시기는 날카로운 대립의 시기였으며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갈라주는 깊은 변화의 시기였다. 황제권과 교황권이 대립하여 분리되고 동서 교회가 나뉘고 세속의 지배세력에 교회가 의존하고 종속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수도원 운동 및 갖가지 평신도 운동이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고 이끌었으며 1, 2차 십자군전쟁이 있었다. 정치, 사회적인 혼란과 대립 속에서 라인지역의 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굶주리기도 했던 때여서 다가오는 천년 왕국을 위해 현세를 멀리하고 철저한 금욕과 고난을 강조하는 종교운동이 나타나고 이들을 적 그리스도로 단죄하는 종말론적인 신학이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 문화가 많이 전해졌는데, 특히 1차 십자군 전쟁 때는 어린이와 농노, 일용노동자들로 구성된 십자군도 있어서 넓은 층이 이슬람 문화에 접하게 되었다. 한편 문화 학술적으로는 대학교육의 기초가 되는 스콜라식 학교교육으로 "12세기의 르네상스"라고 할만큼 이전의 학문들을 집대성하여 편찬하는 시기였다. 많은 이들, 많은 것들과의 지적인 교류를 통해서 학문이 확대 심화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힐데가르트가 지냈던 지역의 특징과 상징적인 의미들이 그 생애와 저술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라고 하지만 빙엔에 위치한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에선 29년, 그 이전에 글란강과 나에강 어구에 위치한 디지보덴베르크에서 10여년이 더 긴 38년을 살았다. 하지만 비전을 인정받은 후 또한 비전에 의거해서 힐데가르트 스스로 수녀원을 옮기기로 결정했고, 또한 이 곳에서 효과적으로 세상을 향해 '예언자'적인 영향력을 펼쳐간 곳이 루페르츠베르크이므로 '빙엔의 힐데가르트'라 알려진 대로 이 지역이 차지하는 의미가 힐데가르트의 사상에 더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힐데가르트의 생애를 살펴보며 이런 연관성을 좀 더 깊이 알아본다.
힐데가르트는 귀족의 가문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은수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6살 위인 슈폰하임의 유타에게로 보내졌다. 당시 수도원은 여성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리고 생존이 위협을 받는 그 시기에 어린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에게는 수녀원이 건강과 삶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고향의 집보다 더 안전한 곳이었다. 유타도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3년 정도 당시 유타의 교육을 맡았던 귀족 출신의 과부 우다에게서 함께 교육을 받았다. 아마도 자신의 교육을 맡은 우다의 영향과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개혁 수도원의 영향으로 12세기의 종교개혁이라 일컬어지는 당시 종교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은 유타는 평생을 순교자와 같은 고난의 순례(peregrinatio)를 하려 했다. 11세기부터 평신도들이 다양한 형태로 수도생활이나 은수 생활과 비슷한 종교공동체를 이루어 가기 시작했다. 삶의 모든 영역이 이 흔들리는 변화의 시기에 특히 많은 여성들이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해서 초기 공동체 이후 처음으로 서구 라틴 교회 내에서 여성들이 큰 중요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힐데가르트가 14세때에 유타와 함께 베네딕트 수도회 수녀로서 허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일반적인 경향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타가 원했던 그런 종교생활방식은 여성에겐 아주 드문 형태였다.
유타는 디지보덴베르크의 남자 수도원 옆에 유거지를 정하고 힐데가르트와 다른 한 소녀와 함께 세상과 격리되어 청빈과 극단적으로 엄격한 금욕생활로 자신을 성화하는 은수생활을 시작한다.
후에 루페르츠베르크로 수녀원을 옮긴 후에 힐데가르트가 저술한 성 디지보트와 성 루페르트에 대한 전기에서 두 성인의 특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디지보덴베르크는 그의 자기성화를 추구하는 엄격한 생활방식에 대한 반대자들의 거센 반발에 주교직을 내놓고 완전한 자기성화를 추구하며 이방인들에게로 고난의 순례길을 가다가 이 곳에 정착하여 수도회를 세우고 홀로 숲에서 지내며 엄격한 고난의 수행을 계속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은수자 디지보트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지내던 곳이었다. 디지보트 성인이 이 곳에 정착한 이유가 있듯이 디지보덴베르크는 교통의 줄기인 강변이 아니라 숲에 위치한 곳으로 위치나 교통 상으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외진 곳이었다. 이 곳에서 힐데가르트는 유타와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베네딕트 성인의 규율대로 매일 일곱 번의 시간경을 바치고 신구약 성서와 옛 교부들의 가르침을 읽고 들으며, 자신들의 먹거리에 필요한 야채와 향신료 겸 약초를 재배할 수 있는 텃밭을 재배하며 지냈다. 이렇게 매일의 기도와 전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음악과 라틴어를 익히고 매일의 생활 모든 것을 성서의 말씀, 표현으로 담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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