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한국교회의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은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아 9월 12일 오전10시30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교리신학원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것이 다 후회스럽다"는 말로 지난 사제 생활을 회고했다.
『돌이켜 보면 사제생활 50년동안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나선다면 이 죄인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진솔한 자기 반성
김추기경은 『처음 사제품 받을 때 엎드려 다짐했던 마음가짐을 50년 동안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다』고 밝혔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땅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앞장서며 한국교회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칭송받는 추기경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이었다.
사목자로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평생을 헌신해온 추기경은 이날 기자 간담회를 통해 자기 반성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인간적인 체취를 보여주었다.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통회와 질책이 오늘날 김추기경을 있게 한 근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기경은 또 사제생활 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2년간의 본당 사목과 가톨릭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시절을 꼽았다. 추기경은 『가톨릭시보 사장 당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식을 통신으로 받아 직접 번역해 보도하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고 전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70~80년대 우리나라가 이른바 군사 정권하에 있을 때 인권과 사회적 문제 등으로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겪었던 시기였습니다.
국민적 화합도 이뤄지지 않아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지 방안을 찾는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이 약이라고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로 이겨냈습니다. 기댈 때는 주님과 양심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후회스러운 일도 많아
-추기경님의 삶에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함께 했다고 생각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저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에게 사제의 길을 보여주신 형님(고 김동한 신부)은 그 길을 몸소 걸으셨지만 저는 생각만 했을 뿐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만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과 함께 하려는 열정만 가득했었죠.
-50년 사제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아쉬웠던 점과 보람된 일이 있으셨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을 얘기하라면 모든 일이 다 그러합니다. 사제품을 받을 때 엎드려 주님께 다짐했던 모든 결심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저는 이 죄인을 용서해달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주님께 기쁘게 보여드릴 것보다 용서 청할 것이 더 많아요.
그리고 사제의 길을 걸으며 가장 보람된 일을 회고해보면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부가 되자마자 안동과 김천에서 2년간 본당 사목하며 신자들과 직접 생활했을 때입니다. 그때 맺은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독일 유학 후 1964~66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을 맡았을 때입니다. 그때 세계 교회가 세계 안에 복음적 쇄신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고 있었어요.
당시 교회 언론은 가톨릭시보가 유일했고 외국통신을 받으면 직접 번역도 하면서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정말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얼마나 일에 몰두했는지 밥먹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제 생활 중 가장 열의와 정성을 쏟아던 시간이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언론 사태, 남북한 관계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나라와 나라는 가까워 졌지만 선의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지금은 우리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에 서로 다투다 일본에 강점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정치적으로 힘을 모으는 쪽보다 흐트리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여야간의 당쟁 싸움이 아니고 또 말 뿐인 영수회담도 아닙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진지하게 만나 깊이 얘기하고 협력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협력과 양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나부터 변화해야
-좀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어떠한 것인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생명 존중의 가치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직접 창조하시고 극진히 사랑하셔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리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죽음의 문화에 빠져 있습니다.
해마다 150만명의 태아가 낙태로 죽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고아 수출국이란 불명예까지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 바로 그 대가를 우리가 치르게 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관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인간존중입니다.
-미국에서는 엄청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너무나 놀랐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뉴욕과 워싱턴의 교구장게게 곧 조의를 전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번 사태에 너무 강하게 대처해서 전쟁 등의 더 큰 불행으로 비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 교회는 새 천년기를 맞아 교회 쇄신과 발전을 위한 다채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교회 쇄신을 위해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조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서울대교구 시노드 의견수렴 결과를 교회 언론을 통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공히 성직자들의 변화와 쇄신을 희망하고 있더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특히 교회 제일 윗 자리에 계신 주교님들부터 변화돼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 새로워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정신과 말씀으로 이땅의 모든 교회 구성원들이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교회 쇄신과 변화가 반드시 앞당겨지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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