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사목자로 헌신해온 서울대교구 임충신 신부가 9월 18일 오전 4시53분 95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격동의 세월을 지내온 고인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사제들과 신자들의 신앙심 고양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현재 본 난에 자신의 삶과 생애를 연재하고 있는 중이었다. 본지는 그리스도의 삶을 충실히 따라 올곧은 사제의 길을 걷다 선종한 임신부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그동안 고인으로부터 전해들을 얘기를 토대로 계속 그의 삶을 연재해나갈 예정이다. 삼가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 사제서품식 후 기념촬영했다. 중앙이 故 임충신 신부.
용산 소신학교에서는 정초에 「대시험」을 치뤘다. 이때는 주교님이 오셔서 가운데 앉으시고 교장 신부님과 선생 신부님은 양옆에 앉으신다. 우리는 이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걱정이 태산같았다. 왜냐하면 신학교에 남아 있느냐, 보따리를 싸서 집으로 가느냐가 이 대시험에 달렸기 때문이었다.
주교님께서 시험 치를 학생의 이름을 『임충신 마티아』하고 부르시면 『네』하고 앞으로 다가선다. 시험 문제는 교장 신부님하고만 묻고 대답한다. 점수는 세분이 다 각각 기록하였다가 나중에 세분의 점수를 평균화하여 매겼다.
시험 다음날 여러 학생들이 퇴학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한푼도 없으므로 신학교 사무원으로 있던 조 방지거씨가 용산 정거장으로 데리고 가서 각각 자기 집으로 갈 차표를 사주었다. 그러면 몇 점이 퇴학 점수인가? 당시 프랑스 신부님들이 매긴 점수는 우리와 달랐다. 우리는 100점을 만점이라 하나 프랑스에서는 5점이 만점이요, 3점은 겨우 퇴학을 면하는 점수요, 3점 이하는 낙제 곧 퇴학이었다.
겨울 방학이 일주일이었으므로 학생들이 집에도 못갔다. 대신 교장 신부님께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놀이를 마련해주셨다.
묵주기도 시간에 장난과 벌
신학교에서 주는 구두는 어디서 속아서 잘못 사왔는지, 2~3일만 되면 찢어져 우리는 이 구두를 『빠삐룸(종이) 구두』라고 말했다. 우리 반장 안분도가 자기 돈으로 구두를 사다 신고 자랑삼아 말하기를 『봐라 내 구두는 진짜 가죽이요, 모양 좋고 튼튼하고…』하면서 제 구두 자랑만 매일 했었다. 우리는 질투가 나서 『네 구두도 빠삐룸이야!』하고 놀려주었다.
묵주기도 시간이 되어 모두가 열심히 크게 합송을 하는데 나는 안분도를 골려주려고 기도하다 말고 칠판에 나가 분필로 『안분도 구두 빠삐룸』하고 크게 쓴 후 막 돌아서니 신부님이 와 계시는 것이었다. 내 가슴은 덜컥 내러 앉고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신부님께서는 『야! 이놈 휴식 시간도 아니고, 기도 시간에 이런 장난을 한단 말이냐』하고 큰 벌을 주었다.
일제시대 고해성사
이처럼 잊을 수 없는 신학교 시절을 마치고 마침내 1931년 사제품을 받고 사제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하지만 나의 사제로서의 길은 시대적 상황이 일제치하였던 만큼 순탄하지 못하고 수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다. 초창기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없다가 일본이 만주를 집어삼키려고 미국과 싸우면서 천주교와 예수교를 일본이 미워하기 시작했다. 둘다 미국교란 이유였다. 그런데 예수교가 미국교라는 건 옳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천주교가 미국교이냐고 항변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지만 일본은 교회를 압박을 하되 빨갱이처럼 죽이지는 않고 감옥에 가두었다. 단지 천황폐하를 공경하라고 했다. 왜경들은 교우들에게 『예수가 높으냐 천황폐하가 높으냐?』하고 물어서 『천황폐하가 더 높다』고 하면 괜찮았고, 『예수가 더 높다』고 하면 불경죄로 감옥에 교우들을 가두었다.
한 번은 왜경이 신자들의 죄를 파악한다는 명목으로 몰래 고해성사를 훔쳐보는 어이없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신부가 공소에 간다고 하면 벌써 그곳으로 경관이 와 있었다. 내가 평상시처럼 공소에 가니까 벌써 경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미사짐을 가지고 있으니까 날더러 그 미사짐을 풀어 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미사짐을 풀자 경관은 신자들의 교적을 보고 『천황의 연대인 황기를 쓰지 않고 미국식으로 서기를 썼느냐?』 세례명을 보고는 『왜 전부 미국식 이름을 지었느냐?』 또 라틴말 미사 경본을 보고 『이것은 미국말이다』라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다가 『지금 무얼 할 것이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지금 신자들에게 고해 성사를 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관은 고해성사가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고해성사라는 것은 신자가 스스로 지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면 신부가 사죄경을 영함으로써 그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일순간 경관은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나에게 교우들마다 전부 지은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는 것인지 되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 경관은 나에게 신자들이 지은 죄의 내용을 이 공책에 적어서 경찰에다 바치라고 했다.
참으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내가 경관에게 그 고백한 죄를 다 알리게 되면 나의 사제직이 파직되고 큰 벌을 받는다고 말해야 옳을텐데 그렇게 하면 당장에 나를 감옥에 가둘 태세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일단은 경관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