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를 읽고있는 힐데가르트 수녀.
유타는 마치 신탁(神託)을 찾듯이 삶의 기로에서 예언적인 말씀을 찾는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자선을 베푸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일과 축일에도 몸에 고난의 사슬을 감고 지낼 정도로 혹독한 고난과 단식, 기도로 자기성화의 길을 걸었다. 반면 모태에서부터 비전의 은총을 받았다고 하는 힐데가르트는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이런 혹독한 자기수련은 견뎌낼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힐데가르트는 오히려 「몸과 영혼이 하나」라는 신념을 더 굳혔다. 후에 자신의 비전에서 힐데가르트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혼만이 아니라 몸도 창조하신 것이므로 몸도 하느님의 선물이며 영혼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이 살찌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며 『그러므로 몸을 잘 돌보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덕인데 지나치게 몸을 학대하는 극단적인 금욕은 오히려 창조주가 주신 덕을 유지하는 힘, 겸손과 사랑을 잃게 하고 평화로운 모습보다 분노에 싸인 모습을 보이게 한다』고 밝힌다.
힐데가르트가 어려서부터 비전을 경험했던 것을 함께 지내는 유타에게 감출 수 없었지만 극단적인 고행으로 자기성화의 길을 추구하는 유타는 힐데가르트가 받은 비전의 은총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유타만이 아니라 디지보덴베르크 수도원의 수도자들도 대부분 같은 입장이었다.
유타의 사후 5년이 지나서 힐데가르트가 43살이 되었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글로 쓰라』는 천상의 소리, 곧 저술가로서, 예언가로서의 부르심을 듣는다. 힐데가르트가 첫 저술 「길의 조명(照明)」(Scivias)의 서문에 기록하였듯이 이 부르심은 그녀를 뒤흔들어 놓았다. 처음에 힐데가르트는 이를 거부했다. 감히 주제넘은 짓을 하는 것이 될까봐 두려웠다. 내적인 갈등과 분열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힐데가르트는 이 상태를 수도원장의 대리이자 그녀의 스승이며 고해사제인 폴마르에게 말했다.
그녀가 비전을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폴마르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르도록 고무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직무를 이행하기로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면서 병이 나았다. 그녀가 글을 쓰면 폴마르가 내용이 바뀌지 않는 한에서 다듬어주기로 했다. 첫 저작 「Scivias」를 완성하기까지는 10년의 시간이 걸렸으나 이렇게 자신이 보고 쓴 것을 외부에 알리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그녀는 클레르보의 베른하르트(Bernhard von Clairvaux)에게 자신의 글을 평해주도록 청했다. 힐데가르트의 글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하다는 인정을 받는 이후의 행로(行路)에 이 한 걸음이 아주 중요한 행보(行步)가 되었다.
1147년 트리어 시노드에서 교황 에우제니우스 3세가 힐데가르트의 비전을 믿을 만한 것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그녀의 이름이 전 유럽으로 알려졌다. 교황이 그의 비전을 인정한 후 많은 이들이 힐데가르트를 「라인지역의 데보라」로 여겼고 힐데가르트 자신도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했다 그러나 디지보덴베르크라는 외진 곳에 갇혀서는 비전의 빛을 비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리적으로 남자 수도원에 종속된 상황에서 남자 수도원에서는 여성 공동체를 계속 엄격한 금욕적 규율을 따르는 은수자 공동체로 유지하려 하였는데, 남자 수도원에서 모범으로 보는 그러한 순교에 가까운 극단적인 고행을 통한 자기성화의 방식은 비전의 은총을 입고 세상에 예언자적인 역할을 하고자 하는 힐데가르트의 기본관점과 일치될 수 없었다.
힐데가르트는 「내적인 조명」에서 새로운 수녀원이 서 있는 장소를 보았던 곳, 루페르츠베르크로 수녀원을 옮기기로 했다. 쿠노원장이 그녀의 이 소망에 반대했지만 고위귀족인 공동체 수녀들의 가족들의 지원으로 마인쯔 대주교를 움직여 루페르츠베르크에 수녀원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거의 2년에 걸친 이 대립기간에 힐데가르트는 중병을 앓았다. 수도원장의 지시와 「내적인 빛」의 지시 사이에서 마비된 상태로 바위덩어리처럼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쿠노원장이 루페르츠베르크로 수녀원 이주를 허락한 다음에야 그녀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1150년 루페르츠베르크로 이주했다. 루페르츠베르크로 떠나면서 힐데가르트는 디지보트 성인으로 대표되는 디지보덴베르크에서의 종교적 관점과 생활상, 곧 세상을 떠나 고행으로 자기성화의 길을 찾는 은수자로서의 상을 완전히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