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20대의 한 청년은 서울의 예식장을 자비로 빌려 노인 450명을 모시고 이들을 위한 잔치를 벌였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그 누구도 채 갖지 않던 시대였다. 이후 청년은 노인의 날 제정을 주장하며 노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오는 10월 2일 올해로 5회째를 맞는 노인의 날은 이 사람이 없었다면 제정이 더디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돈희(임마누엘·수원교구 수지본당)씨의 노인 사랑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는 「아버지날」을 제정해야 한다며 나름의 근거를 모으기 위해 학생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던 바 있다. 대학시절 한 저명인사의 아버지가 구걸하던 것에 충격을 받은 이씨는 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노인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노인의 날 제정에 백방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직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신문사, 잡지사, 방송국에 독자투고 하는 것이 일상생활이었어요. 별 반응이 없자 돈을 털어 신문광고까지 냈습니다.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 15번이나 투고하니 담당 PD가 연락을 하더군요. 미안해서 제 편지를 못 버리겠다고, 한 번 어떤 사람인지나 만나 보고 싶다고요. 그래서 저의 첫 방송출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연이은 방송출연 이후에도 노인의 날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역대 대통령과 국회의원, 저명인사에게 편지를 쓰는 등 노인문제를 향한 그의 집념은 계속됐다. 72년과 76년에 각각 설립한 노인문제연구소와 한국노인학회 이름으로 경로효친 수기와 노래를 공모하기도 했다. 본지 광고를 통해 교회부터 노인공경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노인을 위한 일에 전념하는 저를 묵묵히 뒷바라지 해온 부인에게 감사할 뿐이죠. 아무도 제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아 지치고 외로울 때 격려해준 아내 덕분에 30년간 끈질긴 노력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의 권리를 향한 그의 집념은 비로소 노인의 날이 제정되고서야 결실을 맺은 듯하다. 아울러 그는 91년 현대사회연구소가 공모한 「서기 2천년을 대비한 나의 미래설계」에서 「노인마을」을 제안해 대상을 수상한 바 있기도 하다. 양로원과 함께 논밭과 성당을 갖춘 노인마을을 만드는 일은 그가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꿈이다.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에서 노인은 더욱 약자로 소외될 우려가 있습니다. 가족이 화합하지 못하고 가족 구성원조차 무시하는 현실에서 과연 건강한 사회가 가능할까요. 노인을 학대하는 일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사랑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입니다』
한편 그는 노인들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연륜에 맞는 행동과 아랫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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