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발전없는 개인이나 조직은 결국 도태
▲ 정의채 신부
제5회 가톨릭학술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의채 신부(서강대학교 석좌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오롯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철학자로서 토마스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 우선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사상사에 있어서 지니고 있는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 성 토마스는 신앙을 지성화하고 지성을 신앙화하는데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인류가 보유한 최고봉입니다. 사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를 앞설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의 가장 위대한 특징은 지성입니다.
현존하는 가톨릭의 대 신학자나 철학자들은 예외 없이 토마스에 기초한 대가들입니다. 토마스는 역사의 흐름을 미래 지향적으로 이끌어갑니다.
예컨대 「새로운 사태」(레룸 노바룸)은 토마스의 전문가에 의해 기초됐습니다. 이 회칙은 100년의 투쟁 끝에 공산주의를 파멸시킨 정신적 기초가 됐습니다.
▲ 그렇다면 특별히 「신학대전」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까.
- 오늘의 사상적, 실생활적 혼미를 벗어날 큰 빛도 영원한 만민의 진리, 영원한 만민의 선, 영원한 만민의 가치를 주는 신학대전에서 올 것입니다.
신학대전은 토마스의 전 저작 중 약 7분의 1에 해당되지만 가장 체계적이고 독창적입니다. 하늘과 땅을 관통하고 공시적(共時的, 언제나 동시대적이며) 통시적(通時的, 역사의 모든 시기를 관통하며) 종말론적이어서 미래 지향적입니다.
미국의 대참사는 과학기술, 자유경쟁 경제 체제에 새로운 가치관 정립을 시급히 요청합니다. 이런 면도 교회는 토마스가 성경에 근거해 제시한 인간 존재와 생명의 가치, 자연의 본 모습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안의 학문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분명한 것은 학문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개인이든 조직이든 결국은 도태된다는 것입니다.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으로 깊이 있는 학문적 연구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더 분발해야 합니다.
교계, 학계, 지식인 사회 모두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토마스에서 우리는 13세기에 쓴 저서가 21세기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정신적 기초가 됐을 정도로 미래 지향적인 면을 봅니다.
▲ 앞으로 신학과 철학 분야에서도 평신도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되는데….
- 물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황청을 보수적이라거나 성직자 중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유한 학문 영역에서 권위를 지닌 많은 평신도들이 교황청의 각종 위원회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합니다.
200주년 사목회의를 마치고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위상과 역할이 많이 신장됐지만 그들이 지닌 카리스마와 능력을 더욱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물론 평신도들 역시 자신들의 소명감을 더욱 투철하게 인식하고 교회와 복음화를 위해 투신하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가톨릭학술상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한 말씀 해주십시오.
- 가톨릭학술상의 제정 취지는 무엇보다도 평신도 신학자 양성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취지가 더욱 살아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인다면 우리 교회의 기본적인 면에 더욱 주목하고 그 바탕 위에서 토착화의 성과를 평가하며 그러면서도 세계성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많이 발굴해주시기 바랍니다.
》 약 력 《
1953 - 사제 수품
1961 - 로마 우르바노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 받음1961~1985 -가톨릭대학 철학 교수
1972~1973 - 독일 뮌헨대학교와 뮌헨 S.J 철학대학에서 철학연구1974~1976 - 가톨릭대학 대학원장
1981~1985 -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부위원장(실무책임자)1982. 12. 4 -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1988. 9. 1~1991. 8. 31 - 가톨릭대학 총장
1991. 3. 7~1992. 6. 5 - '환경 보전을 위한 국가 선언문' 제정 위원장1991. 8. 3 -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92. 11. 1~1993. 6. 30 - 서강대학교 부설 생명문화연구소 창설 및 초대소장, 현재 상임고문1992. 3. 1~현재 - 서강대학교 석좌교수
현재 - 한국 가톨릭철학회 회장 역임 및 현재 아시아 가톨릭철학회 회장
■ 연구상 - 박문수씨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장)
“지적·문화적 토착화 위한 연구 지원 적극 나서야”
▲ 박문수씨.
그는 현재 우리 교회의 정보사회에 대한 대응이 그야말로 초보적인 단계라고 평가한다. 새로운 수단을 활용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연구 분야에서는 더 낙후되어 아직 변화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보사회의 본 모습이 거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정보사회도 과거와 연장선에 있습니다. 정보통신혁명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제한적인 측면에서 보게 되는 변화만이 이전과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에 중요했던 윤리적, 사목적 요구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너무 제한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그는 현재 교회의 제일 중요한 과제는 경쟁의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교회가 해왔던 복지와 사회사목의 영역을 더 넓히고, 교회의 자원을 더 할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래를 생각할 때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지적, 영적, 문화적 빈곤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제 선교 3세기에 접어들었으니, 가톨리시즘을 한국 사회와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정신구조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는 특히 평신도 신학자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근 몇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는 신자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이미 시작한 신자들도 공부를 중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차 지적, 문화적 토착화는 중요하고 필요해지는데, 정작 일할 사람들은 줄어드는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그는 따라서 평신도 신학자들을 교회에서 적극 활용하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연구자들에게 연구의욕을 북돋우고 연구과제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도록 연구비를 제공하며, 자질을 갖춘 이들에게는 신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학술상의 범위를 더 넓혀서 교회의 다양한 지적·문화적 영역에서 해주시면 활동하시는 분들에게도 격려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가톨릭신문사가 '가톨릭 학술 문화 진흥 재단'을 설립하여 가톨릭교회의 지적, 문화적 토착화에 큰 기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평신도 신학자 양성도 이 재단에서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경과보고
양한모 기념 가톨릭학술상은 1997년 6월 20일 고 양한모 선생의 유족들이 가톨릭신학 연구와 교회 내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 가톨릭신문사에 기금을 기탁함으로써 제정됐다.
그해 9월 3일 제1회 수상작으로 허창덕 저 '라틴 한글사전'과 이를 편찬한 가톨릭대학교 고전라틴 연구소를 선정해 12월 17일 첫 시상식을 가졌다.
제2회 수상작으로는 심상태 신부 저 '속 2000년대의 한국교회'가 선정됐고, 제3회 수상작에는 김진소 신부의 '천주교 전주교구사 Ⅰ', 그리고 제4회 가톨릭학술상에는 최석우 신부의 '한국 천주교회사의 탐구 Ⅲ'을 선정해 시상식을 가졌다.
올해 제5회로 그 연륜과 권위를 더해가고 있는 가톨릭학술상 운영위원회는 지난 4월 4일 1차 운영위를 열고 10월 18일 오후 4시 장충동 분도회관에서 시상식을 열기로 했으며 본상과 별도로 신진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상'을 신설키로 했다.
제5회 학술상 심사를 위해서 모두 3차례의 심사위원회가 개최됐고, 학술상 본상의 후보작을 3편의 저서들로 압축했다. 이 저서들을 다시 최종 심사에 회부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양한모 선생 유족들의 특별한 호의로 신진 연구학자들에 대한 격려의 의미에서 '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추가하여 시상하기로 했다. 그리고 연구상 수상 후보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거쳐 일정 인원을 선정한 후 최종 심사위원회에 그 선임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심사위원단으로 철학 부문에 박종대 교수(서강대학교 철학과), 성서 부문에 안병철 신부(서울 세종로본당 주임) 그리고 운영위원인 조광 교수(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고 추후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어 9월 3일 상기 3명의 위원으로 심사위원회를 개최, 본상 후보에 오른 세작품과 연구상 후보에 오른 신진학자들의 연구 업적을 검토, 평가했다.
이날 심사위원회의에서는 후보에 오른 각 작품들이 두말할 나위 없는 노작들이라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특별히 '신학대전'의 방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한국어로 연구 번역한 노고와 업적을 높이 평가해, 정의채 신부를 제5회 가톨릭학술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아울러 박문수(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장)씨를 가톨릭학술상 연구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 심사평 - 박종대 교수(심사위원장)
“가톨릭사상 연구 활성화에 좋은 자극제”
▲ 박종대 교수.
알려진 바와 같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양고대 그리스사상, 로마사상, 아랍철학, 그리스도교 사상을 통합하여 하나의 위대한 그리스도교적 사상 체계를 완성한 중세의 큰 사상가이고 그의 사상은 현대의 가톨릭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신학대전'은 유럽 사상의 원천 중의 하나로서 고전적인 가치가 있으며 하느님, 세계, 인간의 존재를 깊이 탐구한 저서이다.
이번에 수상한 저서는 토마스의 '신학대전' 3권이다. 이 번역에서 역자는 번역용어선정에 세심하게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원전의 독해에 충실하고자 한 정의채 신부의 이 번역은 한국의 신학계와 철학계는 물론이고 우리 문화를 풍부하게 하며, 한국 학계의 미진한 연구분야를 보충하는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가톨릭 신자수가 증가하는데도 교회 안에서 삶의 양식이 되는 학술과 문화의 연구와 진작이 소홀히 되고 있는 터에, 이 번역이 가톨릭 사상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높은 연세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는 정신부는 "학자에게는 정년이 없다"는 말을 몸소 증거하고 있다. 앞으로도 정신부의 원숙한 연구결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