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중엽 교회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았을 때, 성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을 통한 새로운 영성과 예수회 창설로 쇄신과 개혁을 요구하던 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491년 스페인 로욜라에서 태어난 이냐시오는 스페인 왕실의 재상 후안 벨라스케스의 시중을 들면서 품위있는 기사로 성장했다. 영웅적인 기사가 될 것을 꿈꾼 이냐시오는 프랑스와 격돌한 팜플로나 전쟁 때 심한 부상을 당한 그는 로욜라로 환송돼 병상에서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회복기를 보냈다. 이때 「그리스도의 생애」「성인들의 꽃」과 같은 몇 권의 종교서적을 읽으면서 큰 위안을 얻고, 성인들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세속의 야심과 욕망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건강이 회복된 그는 몬세라트 성모성지와 만레사로 순례를 떠나 탁발과 고행, 극기와 기도의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삼위일체, 창조, 그리스도의 인성 등 깊은 신앙의 신비를 체험했다. 1523년 로마와 베니스를 거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귀국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을 것을 결심하고 파리대학에서 철학, 신학, 자연과학을 비롯해 라틴어, 논리학 등을 배웠다. 이 시기에 이냐시오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비롯해 6명의 동료를 알게됐고, 이들은 예수회의 첫 회원이 됐다. 이들은 1539년 4월 수도회를 창설할 것을 합의했고 같은 해 6월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구두로 회헌을 인준받았으며 1550년 7월에서야 교황 율리오 3세에 의해 최종 인가를 받았다.
이냐시오가 1556년 65세의 나이로 선종했을 때 수도회원들은 1000명에 이르렀고 13개 관구로 나뉘어 110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609년 이냐시오는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복자가 됐고 1622년 3월 12일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시성됐다.
중세교회에 쇄신의 방향을 제시했던 성 이냐시오는 수도자의 제복, 공동으로 바치는 성무일도, 수도원의 공동전례 및 수도관례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도형태를 제시했다. 그러나 전례가 영성생활의 가장 중요한 원천임을 깨닫고 회원들은 정해진 방법에 따라 매일의 묵상기도와 일반적 및 특수 성찰을 실천했고 영적지도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이냐시오 성인이 겪은 신비체험에 대해 기록한 「영신수련」은 교회 역사 안에서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생활을 개선하게 하는 등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영신수련은 『사람이 아무런 사욕 편정에도 좌우됨이 없이 자기를 이기고 자기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함이다(「영신수련」21)』라고 말한 이냐시오의 영성은 크게 네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기도와 활동을 하나의 차원으로 통합하려는 삶으로서 활동 중의 관상을 주장했고, 오관과 지성, 감성, 의지 등 영혼의 기능을 활용을 중요시했다. 이와 함께 이냐시오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순명하는 자세와 영의 식별을 회원들에게 주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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