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성격이 강한 이번 전쟁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선언한 「신전쟁」이라는 표현에 따라 미국의 모든 군사력과 정보력, 경제력을 동원하는 총력전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전쟁에 대한 우려를 더욱 짙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번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을 암시했으며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 역시 대 태러작전 기간을 6~12개월, 또는 「시한이 없는」 전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격을 당한 아프간측이 강경히 대응하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최첨단 과학 무기의 투입과 총력전, 장기전 계획은 전쟁이 불러올 엄청날 재앙을 벌써부터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쟁발발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며 지난 3일 종교가 결코 전쟁의 대의명분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종교인들이 폭력을 거부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교황은 『종교가 충돌의 대의명분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재확신 한다』며 『그리스도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함께 폭력을 강력히 거부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정의와 단합을 발전시키는 인간애를 건설해야 할 것이 촉구된다』고 거듭 밝혔다.
한편 한국교회의 각 교구 정평위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정의구현전국연합 등도 성명서를 통해 『미국의 보복전쟁은 비록 테러를 응징하기 위한 목적일지라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죄없는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불러올 또다른 폭력의 악순환일 뿐』이라고 전쟁반대를 촉구한 바 있다.
테러에 대한 응징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보복성격이 강한 미국의 이번 무력행사는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국제법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엔헌장(1장2조4항)은 기본적으로 회원국의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있고 그중 예외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무력공격을 받고 안보리가 조치를 취할 때까지의 자위권 행사 뿐이다. 보복공격은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자위권 확인 절차를 받아놓았으나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중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만으로는 미국의 자위권 행사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무력행사를 인정하는 안보리 의결이 없는 상태에서 무력행사에 돌입하게 미국의 공습으로 아프간 민간인이 희생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전쟁과 관련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은 『현대인들은 자신의 전쟁행위에 대해 엄히 심판받을 것을 알아야 한다』며 『과학무기를 사용하는 전투 행위는 막대한 무차별 파괴를 가져올 것이며 이런 파괴는 정당방위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행위』라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강대국의 최첨단 무기들을 사용할 때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세계적인 황폐, 파괴적 결과와 적대 진영 쌍방의 보복적 상호 살육 행위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교황 비오 12세는 『폭력은 모든 것을 때려부수는 반면에 아무 것도 건설하지 않는다. 또한 욕망에 불을 붙이지만, 진정시키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증오와 파괴를 축적시키고 논쟁자들에게 화합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밝히며 폭력이 정의와 평화의 세계 건설에 도움이 되지 못함을 지적했다.
미국이 당한 참혹한 테러에 대해 미국과 전세계는 '정의'의 이름으로 응당한 조치를 취해야 했던 것은 양보할 수 없는 현실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응당한 조치의 유일한 방식이 '전쟁'일 필요는 없으며 현재 미국의 보복전쟁은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윤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테러 세력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유엔의 조약이나 국제법에 근거한 적절한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미 테러사건의 유효하고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쟁이 모든 인류의 인도주의적인 이념을 불식시키고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역사가 일깨우는 자명한 교훈이다. 더군다나 종교가 하나의 대의명분이 된 이번 전쟁은 전세계 종교인들에게 크나큰 참회를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도이든 이슬람교도이든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신이지 폭력과 증오의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전쟁은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역사가 일께우는 교훈이다. 사진은 10월 8일 피난민 캠프에서 빵을 먹고 있는 아프칸 어린이.
■ 가톨릭 교회의 전쟁론
방어전쟁도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정당
가톨릭 교회의 전쟁이론은 그리스도의 사랑, 정의 및 폭력행위들 사이에 조화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 이론은 각 시대의 전쟁기술과 파괴력을 염두에 두면서 전쟁의 목적과 행동을 제한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므로 고정적 규정이기보다는 전쟁기술과 파괴력의 변동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융통성 있는 이론이었다.
최근의 교황들, 특히 전쟁문제를 많이 다룬 비오 12세와 요한 23세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는 공격전쟁을 절대로 부당하다 여기며 방어전쟁도 정당한 전쟁이론의 조건을 갖추어야만 정당성을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 가톨릭 전쟁이론은 일곱 가지 원리로 요약된다. ①공격전쟁은 언제나 부도덕하다 ②방어전은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 ③방어전 준비는 도덕적으로 합법적이다 ④양심적 병역거부는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⑤전쟁은 최후의 수단일 경우에만 정당할 수 있다 ⑥비례의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 ⑦무기의 사용은 제한돼야 한다.
여기서 이번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은 전쟁은 모든 분규 해소의 방법을 전부 사용해본 후 최후수단으로 사용될 경우에만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전쟁의 물리적, 도덕적 피해는 극심하므로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위의 원리 중 '비례의 원칙' 또한 숙고할 필요가 있다. 비례의 원칙이란 적의 불의행위나 공격으로 인한 손해보다 방어전이 초래하는 손해가 너무 큰 경우에는 방어전일지라도 부당하다는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전쟁으로 인한 손실이 굴욕적으로 받은 불의보다 비교 안되게 크다면 불의를 참아낼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가톨릭 교회의 전쟁이론은 너무 추상적이고 현대사회에서 적합성이 없는 공론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가톨릭 전쟁이론은 첫째, 전쟁에 관한 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양심을 형성하고 도덕적 견해를 추구하게 한다는 점과 둘째, 현대의 전쟁과 평화문제에 있어서 정부정책에 관한 합리적 토론의 길을 열어놓는다는 점에 있어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