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를 다닐 때 어느 신부님이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를 비교하는 강론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개신교에는 있는데 우리 교회에는 없는 4가지를 『성서와 기도 그리고 열성과 선교』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한가지 한가지씩 예를 들면서 우리와 개신교를 비교하면서 정말로 본질적이지만 우리가 잊고 살아가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시의 적절하게 지적하는 강론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교회 내에서는 「선교」라는 말은 굉장히 생소한 단어였고, 「선교사」하면 개신교에서만 사용하는 용어 정도로 이해하던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던가 80년대 후반부터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선교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90년대부터 예비 신자의 급속한 감소와 함께 냉담 신자의 증가 문제가 대두되자 우리 한국 교회는 다시 선교 문제의 중요성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교구별로 가두선교와 소공동체 활성화 그리고 레지오 등 단체 활동을 통해 선교 전략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선교에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고, 그 결과 최근에는 어느 교구의 경우 처음으로 복음화율이 10%를 넘어서고 있는 교구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도 개신교에 비하면 신자들의 의식과 열성, 교회의 선교에 대한 마인드와 예산 문제 등 모든 면에서 개신교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선교 사명」을 교회의 근본 사명으로 재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커다란 성과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든 「복음화」란 말과 「선교」 혹은 「전교」라는 말은 같은 의미의 말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는 10월 마지막 전 주일을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전교주일로 지내고 있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에서의 발현사화로써 복음서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이다. 그 내용은 만민에게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침으로써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주의해서 볼 점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명한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세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함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의 친교의 삶을 산다는 의미일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계명은 율법적인 의미가 아니라 공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친 사랑의 계명 등 그분의 말씀일 것이다.
제자들이 이같은 활동을 하는 목적은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인데 이는 곧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때문에 교회의 선교 사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회의 으뜸 사명이 되는 것이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까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교 주일을 지내면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는 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씀 안에 포함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란 낱말에 너무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선교라 함은 주로 사람을 대상으로만 하는 활동으로 생각해 오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물론 복음의 일차적인 대상이 사람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평신도 교령 5항에 나와 있는 말씀도 한번 되돌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평신도 교령 5항에 보면 『그리스도의 구원 성업은 본래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을 가졌지만 현세 질서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할 뿐 아니라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을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과 가치관, 사상과 생활양식을 바로잡아야 하고, 복음의 근본 정신이 각 민족 문화의 근원에까지 생명력있게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원고를 준비하면서 생각해 보는 것은 복음화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복음화란 말에는 우주적인 개념과 전인격적인 개념이 모두 포함되는 말씀이기에 이 복음화의 사명은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삶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개념도 아니며,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 뿐 아니라 비인격적인 질서와 환경까지도 변화되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화의 사명은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각자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실천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기에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이 수행하는 복음화 사명만이 최고라는 의식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유혹인 다양한 복음화의 사명을 선교 사명을 회피하는 이유로 삼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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