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 황금물결이 일렁인다.
농부들이 여름 내 흘린 땀방울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었다. 황금들녘이 지평선처럼 펼쳐지는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드넓은 평야 곳곳에서 드문드문 결실의 손길이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을 거둬들이면서 지난 여름날의 수고를 잊는다는 원연식(그레고리오·인천 통진본당 하성공소)씨와 김원겸(빈첸시오·48)씨는 우선 풍성한 결실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쌀 유명하기로 소문난 김포 땅. 농부로서 가장 축복 받은 땅에서 농사짓는다는 이들은 풍작을 맞은 올해 흐뭇한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창조주의 가장 큰 선물인 이 좋은 땅에서 짓는 쌀농사가 몇 해 전부터 마음 한 켠에선 큰 걱정거리가 됐다. 이른 봄부터 씨뿌리고, 수해 때 가슴 졸이며 온갖 정성을 다해 지어낸 쌀농사이건만 풍년엔 쌀이 남아돈다고, 흉년엔 거둬들일 것이 없다고 떠들어대는 나라와 대책 없는 농정(農政)이 이들을 멍들게 한다.
『풍년이라 하느님께 더할 나위 없이 감사드리죠. 이 좋은 땅이 없다면 어찌 이런 결실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쌀은 생명입니다. 수십대의 자동차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지요. 쌀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런데도 그 쌀, 땅을 지킬 노력들을 안하니…』
농부도 살리고 땅도 살리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쌀 소비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하는 김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땅을 지켜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만 커간다고 한다.
그나마 쌀 좋은 김포지역은 쌀 수매가 원활한 편이지만 전라도지역은 수매가 안되면 당장 농사를 포기해야할 형편이다.
나라 여건이 안된다면 교회 신자들만이라도 힘을 모아 농부들이 마음놓고 농사짓고 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며 원씨와 김씨는 입을 모은다.
『교회 차원에서 도겞 연계가 이뤄진다면 농부들의 시름을 덜 뿐 아니라 도시 신자들도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쌀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성실하게 거둬들인 농산물은 저희 농부들의 정직한 땀방울이며 양심입니다』
고령화되는 농업인구, 줄어드는 쌀 소비량, 폭락하는 쌀값…. 현실은 그들에게 절망적이지만, 값싼 수입쌀 대신 우리네 농부들이 지은 쌀을 선택한다면 그들에게도 희망은 남아 있을 것이다.
『포도, 배 등 과수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쌀농사를 부업으로 하고 있지만, 농사를 지어야하는 이유는 분명하죠. 농토를 지키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 것이니까요』
풍년 수확을 바라보면서 허탈해하는 농부들에게 들녘의 황금빛 웃음을 선사하는 일은 땅을 지키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몫인 듯 하다.
※문의=(031)988-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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