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땅, 러시아! 이곳에도 봄이 오는가?』
찬 공기가 피부에 다가오는 느낌이 사뭇 다른 느낌을 받으며, 이르쿠츠크 공항을 내릴 때까지도 나의 뇌리 속에 떠나지 않는 물음이었다.
2000년 11월 1일 서울 김포공항을 떠나 블라디보스톡에서 하루를 머문 후, 다음날 러시아 언어 연수 및 러시아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할 눈 덮인 이르쿠츠크 공항에 첫발을 내딛었다. 영하 25도를 가리키는 온도계를 보면서 내가 분명 「철의 장막이요, 동토의 땅」이라 불리던 러시아의 시베리아 한복판에 와 있음을 알았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던 해였다고 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영하 25도가 되면, '따뜻한 날씨'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영하 30도 이하의 눈금이 없는 온도계가 이곳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실감한다.
러시아!
난 지금 왜 이곳에 와 있는가? 누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는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면, 사부 성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나에게도 들려 온다.
『가서 쓰러져 가는 나의 교회를 세워라!』
이곳 러시아에서의 가장 큰 사목은 가톨릭 교회의 재복음화를 위한 일이다. 공산화 이후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주님의 거룩한 집들은 「성당 폭파」라는 이름 아래 한 조각 파편으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갔다. 성직자들과 신앙인들은 눈물이 핏물이 되고,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행렬 속에서도 신앙의 꽃이 다시 이 땅에 피어나기를 기도하였다. 파티마의 성모님의 메시지에 따라 전 세계는 손에 손을 잡고 러시아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1991년 주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 다시 이곳 러시아에서 살아 숨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이곳 이르쿠츠크 감목구는 1997년 폴란드 출신의 예주 마쥬르 신부님이 주교로 서품되면서 새로 탄생된 지역이다. 현재 약 40여명의 성직자와 수녀회들이 가톨릭 교회의 재복음화를 시작하고 있다.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폴란드 성직자들과 수녀들은 주교님이 머무는 이르쿠츠크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동부 러시아 지역(연해주와 마가단, 유지나 사할린)에서 사목을 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가 90%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재복음화란 공산화로 인해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시 신앙을 시작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이렇게 지켜왔다고 전한다.
『어린아이였을 때 학교에서 「하느님은 없다. 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고 배우곤 하였죠.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서는 「아니다 얘야, 하느님은 계시며,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하시곤 손을 잡고 묵주기도를 하였답니다』
학교와 가정에서 상반된 가르침에 따라 혼란의 시기를 겪은 이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간직하였던 것이다. 그런 후, 다시 가톨릭 성당이 문을 열고 재복음화의 길을 시작하였을 때, 어떤 이들은 『이날을 기다려왔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많은 가톨릭 성당이 이미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파괴되지 않은 성당들은 국가에서 문서고나,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관 또는 국가의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건물들이 가톨릭 성당이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찾음으로서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아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톨릭 성당들은 아직 많은 문제들로 인해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 1층의 작은 방들을 얻어, 주일미사와 신심행사 및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현재 종교 활동이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점들은 비자를 얻거나 갱신하는 일이다. 이곳에서 10여년 동안 사목한 이들이 대부분 이 문제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현재 어떤 선교사들은 3개월마다 러시아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다시 비자를 얻어 재 입국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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