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다른 가치관으로 살았던 이들이 어느 날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움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인간존엄성 가치관이 무시됐던 동독사람들에게 인간의 양심과 존엄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게 하고 서로의 이해를 일깨우는 작업은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3차 한·독 학술대회에서 '통일 독일의 가톨릭교회' 주제 발표를 한 안톤라우셔 신부(73·독일 가톨릭사회과학연구소장·예수회)는 "분단 체제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적 통합 화해 일치를 구하는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적 방법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종교와 전통은 새로운 인간사와 사회상을 발전시키기 위한 꼭 필요한 기둥"이라고 말했다.
라우셔 신부는 63년부터 독일 가톨릭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통일 독일의 가톨릭교회 역할을 연구해 온 석학.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관심이 크다는 그는 "매스컴 등을 통해 한국교회가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교회가 중요한 몫을 할 수 있을 만큼 동서독간 종교적 기반이 확고했던 반면, 북한은 종교적 자유를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는 있다"고 말하고 "하지만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 또한 어떻게 가치관을 다시 일깨울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교회의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통독후 독일가톨릭교회가 사목적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잃어버린 가치관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통일 독일에서 교회가 냉담한 신자나 무신론자들에게 강한 매력을 발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는 선교열이 식고 세속화 개인주의와 맞서야 하는 유럽교회 전체 현실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라우셔 신부는 "한국교회가 이런 부분에서는 오히려 저항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입증되었다"면서 "인간존엄성을 바탕에 둔 화해와 인간성 회복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는 희망은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라우셔 신부의 발표에서 제시된 내용중 염두에 둘 수 있는 것 한가지. 재통일 시기를 준비하면서 '자본주의 우선, 사회복지 국가는 그 다음'이라는 사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피해야 한다는 것. 국가는 꼭 필요한 기본조건을 마련하고 처음부터 경제적인 측면과 인간 가치가 중시되는 정의로운 사회질서가 함께 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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