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 과학 문명은 성서와 교회가 가르치는 인간 죽음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표상들을 한갖 전설이나 신화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은 하느님의 피조물이 세상 만물, 특히 생명의 신비조차도 풀어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 교회는 과학적 이론과 검증 방식에 익숙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죽음과 종말의 의미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 죽음과 그 이후의 인간과 세계의 처지를 설명하는 종말 교리를 몇 가지로 나눠 살펴보면서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성찰해본다.
무한한 사랑의 영역
▨ 천국과 지옥
세상의 종말이 오면 열리는 또 다른 세상으로서의 천국은 있을까?
『천국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묻고 싶어한다. 하지만 예수는 항상 이에 대해 『이것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무엇과 같다』고 비유로 말한다. 그래서 종종 잔치(마태 11, 1~10 루가 14, 12∼24) 혹은 겨자씨(루가 18, 18~19)로 비유했다.
천국은 제도와 법, 체제를 갖추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세워질 물리적인 왕국이 아니다. 오늘날 천국은 하느님이 착한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둔 특정 장소로 파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옥 역시 죄인들을 위해 마련된 형벌의 장소가 아니다.
천국,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일상적인 오해 중 하나는 「종말론적 유보」이다. 하지만 무한한 존재로서 하느님의 「나라」는 시공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통치이자 무한한 사랑의 영역이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됐다. 예수 안에서 그리고 한 사람이 사랑을 위해 겨자씨 같은 작은 선택을 할 때 천국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시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인간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충만히 하고 친교를 이룰 때 완성에 이를 것이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심판
▨ 공심판과 사심판
죽은 후에 하느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으로 그 사람의 선업에 따라 상이나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함축돼 있다. 하지만 이를 현세의 법정에서 이뤄지는 심판과 같은 양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죄악성을 정확히 직시하게 된다. 이처럼 하느님과의 만남이 인간에게는 심판으로 체험된다.
한편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 완성에 도달한다. 최후의 심판은 종종 세상의 환난과 종말을 가리키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언서와 복음서, 묵시록 등에서는 이 사건을 무시무시한 재앙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활로 시작된 종말이 인간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다가온다는 표상이다.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종말 단계에 접어든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되면서 목적에 도달함을 극적 양식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공심판과 사심판은 시공간적으로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공심판은 사심판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 연옥 통공과 전대사
연옥 교리는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신앙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지상의 살아있는 신자들의 미사와 기도, 선행 등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이러한 기도는 통공(通功) 신앙의 표현이다. 기도와 함께 죽은 이를 위한 지향으로 행해지는 희생이나 선행 등을 통해 하는 대속 행위에서 「대사」의 의미가 가능해진다.
「전대사」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남용되기도 했는데 교회는 명시적으로 정한 어떤 특정 신심 행위나 선택을 신자가 행할 경우 연옥 영혼들의 잠벌이 모두 사해져 그 영혼들이 연옥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교회가 죽은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통공 행위는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의 아름다운 표현이다.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의미
▨ 그리스도인의 부활
육신의 부활에 대한 사도신경의 고백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에 속하지만 오늘날 이를 인간 육신의 잔해인 뼈와 근육 등이 다시금 소생해 영혼과 재결합하는 것으로 믿는 이는 별로 없다.
영혼과 육신은 인간 존재 안에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이며, 육신의 부활이란 시체가 무덤에서 나와 다시 살아난다는 것보다는 영혼과 육신의 단일 존재인 인간이 죽음 속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되어 전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