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제도적 살인이라고 불리우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한 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를 비롯해 국내 각 종단이 참여하는 범종교연합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과 사형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국회의원들, 그리고 아시아 지역의 사형폐지운동 단체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사형제도 폐지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사형제도 폐지를 통해 죽음의 문화가 판치는 오늘날 생명의 문화 건설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특별 기획을 마련한다.
형벌로서의 사형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을 통해 볼 때 사형은 형벌의 의미에 부합되지 않으며 따라서 폐지되어 마땅하다.
사형은 제도적인 살인
형벌의 의미는 범죄에 대한 응보와 보복, 범죄의 예방 및 재범의 방지와 억제, 그리고 범죄자의 개선과 사회 복귀의 의미를 갖는다. 응보와 보복의 의미는 범죄에 대한 응징과 보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응보와 보복 정의만을 강조할 때 우리 사회는 사랑과 용서가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은 법 준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거나 억제한다는 주장은 사형제도의 존속을 찬성하는 가장 광범위한 이유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수없이 사형 집행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오히려 범죄행위는 더욱 흉악해지고 증가하고 있다.
사실 많은 범죄가 충동적이며 범행시 대부분이 사형의 두려움보다는 도피 방법이나 범죄 행위를 감추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형 제도가 아무런 효과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형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재판의 오판으로 인해 사형을 언도하고 집행했을 경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현대 사회는 사형 말고도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갖추고 있다. 사회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종신형 등의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의 개선과 사회 복귀라는 문제는 당연히 사형이라는 형벌에는 적용될 수 없다. 사형은 범죄자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기에 보복과 응징이라는 의미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결국 사형은 형벌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지는 또 하나의 살인이며 보복과 응징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제도적인 살인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형제도 폐지 운동이 일어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하게 진행돼온 사형 폐지의 목소리는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이어졌다.
사형폐지운동 경과
특히 지난해말부터 국내의 종교계가 뜻을 모아 출범한 「사형제도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의 활동은 한국의 사형 제도 폐지 운동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계기가 됐다.
천주교와 불교, 개신교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온 각 종단은 이후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협의회 등 다른 종단의 합류로 범종교적인 운동으로 확산됨으로써 범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져온 범종교연합은 6월 2일 오후 2시 입법기관인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첫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특히 사형 제도 폐지가 오직 종교계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양심을 가진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야 할 생명 문화의 건설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종교계는 이날 행사에서 「생명권은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아무리 흉악한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생명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평화대행진, 각 종단 원로의 사형수 방문, 순회 강연 등 지속적인 후속 프로그램들을 계획, 추진하기로 했다.
사형 폐지 운동이 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 소위원회가 구성된 것이다. 소위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설치를 결정한 후 서울과 대전 광주 부산교구 등의 교정 사목 담당자를 포함해 모두 10여명으로 구성, 지난 5월23일 첫 모임을 가졌다.
소위의 발족은 특별히 주교회의 차원에서 사형 제도 폐지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각 교구의 교정 사목 담당자들을 통해 한국 교회 전체가 사형 제도 폐지에 적극 발벗고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범종교연합과 사형폐지소위는 국민들의 사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해 다각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는 한편 관련 입법을 위해 필수적인 국회에서의 특별법 입법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아왔다.
그 결과 국회내 과반수를 넘는 여야의원 154명이 10월 30일 사형폐지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소위는 범종교연합과 함께 이번 11월 한 달 동안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총력을 펼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전시회, 연극제,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마련됐고 특히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사형폐지 아시아 포럼」은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아시아 연대를 확인하는 국제행사로 마련된다.
생명의 문화 건설
사형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온 야만적인 제도이다. 범종교연합은 지난 6월 2일 행사에서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좬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안된다좭고 거듭 호소했다.
선언문은 좬아무리 가증할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라도 치유와 용서를 통한 갱생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는 사랑과 자비가 절실히 요청된다좭고 선포했다.
제도적 살인인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뤄낼 생명의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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