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적인 변화로 학생운동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청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 실천의 방법론을 모색할 때였습니다. 마침 저소득층 지역의 공부방에서 교사로서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있었고 동아리 안에서의 논의를 거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양대 가톨릭학생회 50여명 회원 중 절반은 매주 한 두 번씩 서울 행당동 언덕배기 끄트머리에 있는 낡은 집을 찾는다. 한때 격렬한 철거 싸움이 벌어졌던 이곳에는 이제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그 자락 아래 비만 오면 주룩주룩 빗줄기가 새는 낡은 집들이 있다.
「녹색 대문」의 17평 남짓한 집 앞에 「샛마루 공부방」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작은 방 3개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정숙」을 유지하고 문제풀이를 시키려는 대학생 선생님들의 꾸중이 뒤섞였고 마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작은 단순했다. 신앙은 이웃 사랑을 요구했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지독하게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데리고 기본적인 수업조차 어려웠다. 여학생들은 눈물을 짜기도 여러 번. 고민이 시작됐다. 소규모 영세 제조업체 종업원이거나 유통점 판매원 등 대개 맞벌이 저소득층 부부들. 아이들은 비좁은 골목길로 내몰리기 일쑤였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소풍가서 아이들과 적극적인 스킨쉽을 하고 수업방식도 좀더 효과적으로 개선했다. 고민과 모색이 거듭 되면서 조금씩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변화가 아니라 내가 변화함으로써 알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에서 보살핌과 적절한 훈육을 받은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거칠고 버릇없는 아이들. 처음에는 그저 실망만 안겨줬던 그 아이들에게서 따뜻한 감동을 발견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아파 누운 친구에게 아무 말 없이 물수건을 얹어주고, 전철에서 선생님 앉으시라며 자리를 내주는 아이. 그때그때 느끼는 작은 감동들을 통해 선생님들은 이들 역시 심성이 착하고 맑은 아이들임을 발견해나갔다.
『내가 품에 안고 가야할 이웃들 중에는 내 입맛에 맞고 나를 만족시키는 이들만 있지는 않다는, 너무도 당연한 포용력을 이제서야 갖게 됐습니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운영하는 공부방은 세워진 지 1년 반 남짓. 집이 낡아 곧 인근의 다른 집으로 옮긴다. 주로 인근 2000여 세대의 임대 아파트에서 온 아이들 80여명과 자원봉사자 30여명, 4명의 수녀들이 그려내는 공부방은 서로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살아있는 곳이다.
『열심히 봉사하는 젊은이들이 대견합니다. 때론 아쉬움도 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자기 개발의 시간까지도 희생해 이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어디 쉬운가요』
책임자인 나프란체스카 수녀는 취업 문제로 바쁜 3, 4학년보다 오히려 저학년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한다. 하지만 공부방 교사회 회장인 이재식군은 교사회가 이제 조금 자리를 잡는 시기라며 선배로서 더 큰 열정과 체계적인 교육, 적절한 동기 부여 등을 통해 후배들을 이끌 때 봉사를 통해 얻는 기쁨을 그들 역시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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