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11월 1일 오전 9시30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하양캠퍼스 집무실에서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지 두려움이 앞선다』며 『앞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사제단, 교구민들과 함께 나눈다면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권주교는 임명 발표 후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긴장감 때문인지 다소 무거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의 격려가 하느님과 교회의 부르심에 적극 응답하겠다는 다짐을 굳히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로 정평이 나 있는 권혁주 주교. 인터뷰 내내 겸손한 모습으로 교구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교구와 교구민에 대한 권주교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제3대 안동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함께하는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사도」가 될 것을 먼저 다짐했습니다. 전쟁과 이기심 등으로 분열된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만이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목표어도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Christus, pax nostra)」로 정했습니다.
- 교구출신 사제로 누구보다 교구 사정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현재 교구가 처한 어려운 점과 교구를 위해 가장 먼저 하시고 싶은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 저 자신도 교구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가난합니다. 하지만 교구민들이 가난이 신앙을 위해 복된 측면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가난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부족해도 베품으로써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단지 「가지고 못가지고」를 이분화해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누고 섬기는 모든 것」이 가난입니다. 물질적으로 절제하며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가난의 영성」을 살 때 하느님을 받아들일 자리가 넓어집니다.
- 교구 운영과 미래 사목방향에 대한 구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구체적인 사목방향은 교구 신부님 교구민들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할 것입니다. 저희 교구에서는 이미 생명의 공동체, 도농직거래, 각종 교육 등을 통해 생명·환경 보호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생명·환경보호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복음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교구 사제단과 교구민들에게 부탁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함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고 섬긴다면 진정한 화해의 모습을 가꿔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일치는 획일적인 마지막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셨는데 사목자로서의 철학을 말씀해주신다면.
▲ 평소 신학생들에게도 사제가 되기 전에 먼저 신자인 것을 기뻐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지면 개인과 가족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생활의 촉진제가 됨은 분명합니다. 투신할 수 있을 정도의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자신부터 기도하면서 기쁘게 사는 모범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권혁주 주교는 『말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부족한 자신을 주교로 불러 신앙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 약력
1957년 경북 의성군 신평면 월소3동 출생
1968년 3월~1971년 1월 : 대건중학교
1971년 3월~1974년 2월 : 대건고등학교
1974년 3월~1978년 2월 : 광주가톨릭대학교
1981년 3월~1984년 2월 : 광주가톨릭대학 대학원
1983년 1월 26일 : 사제수품
1983년 1월 ~1984년 3월 함창본당 보좌
1984년 4월~1990년 6월 : 해외유학(프랑스 파리가톨릭대학)1990년 7월~1992년 2월 : 남성동본당 주임
1992년 2월~1997년 7월 : 안동교구청 사목국장
1997년 9월~ 2001년 10월 :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 9월~1998년 8월 : 대구가톨릭대 영성신학연구소장1999년 9월 ~2001년 10월 :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신학과 학과장
■ 권혁주 주교, 누구인가
몸에 밴 ‘겸손·언행일치’ … 포용력있는 목자
그 누구의 말에도 성실히 귀기울이는 포용력이 넓은 사제. 신임 권혁주 주교를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권혁주 주교의 넉넉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품 덕인지 권주교는 선후배 사제간에도 신망이 두텁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 태도는 평범한 가운데서도 늘 모범. 인내심에 있어서도 남다른 면을 보여준 목자의 모습었다. 화내지 않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더라는 말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또다른 채찍질로 알고 노력하게 된다』고 겸손을 표하며 『누군가를 만날 때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문제는 80%이상 해결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권주교는 학생들에게는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실수를 그자리에서 다그치지 않고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고 도와주는 인내심 있는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광주가톨릭대학 졸업 후 함창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사목에 첫발을 내디딘 권주교는 근 7년간 프랑스 파리가톨릭대학에서 수학한 후 귀국, 남성동본당 주임, 교구 사목국장, 가톨릭대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권주교의 이같은 이력은 화려하진 않지만 진정 겸손하고 남을 먼저 위할 줄 아는 목자의 길이었다.
권혁주 주교는 1957년 경북 의성군 신평면의 전형적인 농촌가정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권주교의 온유함은 어릴 때부터 배어온 성품이었다. 중간 자리에서 형제들의 상담자 역할을 도맡는 등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마을에서도 인간관계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가족으로는 어머니 신복순(바울라·77)여사와 위로는 큰 형 혁수(안토니오·61), 둘째 혁만(소시모·58), 셋째 혁대(마리노·51), 아래로는 여동생 순자(글라라·44), 경자(사비나·42)와 막내동생 혁용(요한·40)씨가 있다. 아버지 권오덕(그레고리오)씨는 9살의 어린 나이에 여의었다.
권주교가 태어난 마을에 자리잡은 쌍호공소는 신앙의 뿌리가 깊고 사제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 권주교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6.25 이듬해 다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신앙을 접했다. 어릴 때면 어머니를 따라 2시간 남짓 산길을 걸어 다인성당으로 미사참례 가는 길이 지칠 줄도 모르고 그렇게도 즐거웠단다.
특히 권주교가 성소의 길을 가는 데는 아버지의 권유가 큰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의 굳은 의지를 닮은 탓일까.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오롯이 한마음으로 성소의 길을 걸었다. 또한 지금의 권주교를 있게 한 가장 큰 힘은 어머니의 기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쌍호공소 신자들은 『권주교의 모친은 24시간 내내 기도 속에 사시는 분』이라며 『주교님이 되신 것은 물론 앞으로도 모친의 기도가 가장 큰 뒷바라지가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신학생 시절, 권주교는 소박하고 온유한 성격과 함께 각종 운동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을 보였다.
여러 교구 신학생들간의 축구나 배구시합이 있으면 안동교구 신학생팀은 항상 타교구 신학생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고. 타교구는 인원이 많아 잘하는 사람을 선발해 팀을 구성할 수 있었지만 안동교구는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뛰어야 겨우 수를 맞출 수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선발된 타교구 신학생 팀이 안동교구 팀에게 번번히 졌던 이유는 바로 단결력. 축구 시합을 할 때는 라이트 윙(오른쪽 날개)을 맡을 정도로 권주교는 달리기를 아주 잘했으며 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서도 앞장섰다고 한다.
권혁주 주교는 사목활동에 있어서는 이른바 「조용한 불도우저」(?) 같았다고.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장 김정우 신부도 권주교에 대해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시는 분』이라고 평했다.
교구 사목국장 재임 시절, 평신도들과 팀을 이뤄 토론과 연구를 시작하면, 이를 실천할 때까지 일의 맺고 끝음을 확실히 하며 적극 추진해나갔다. 이렇게 신자들과 함께 일을 해내면 하나의 축제를 치른 것 같다는 권주교. 열심히 투신하고 신앙생활 안에서 보람을 느끼는 신자들 모습을 보며 자신도 변한다고 말하는 권주교의 모습은 신자들을 끔찍히도 아끼는 착한 목자의 모습 그 자체로 비쳐진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떠한 처지에서든 감사하십시오(데살로니카 5,16~18)』를 좌우명으로 신앙의 기쁨을 강조해온 권혁주 주교. 앞으로도 교구민들이 신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권혁주 주교는 다음달 4일 안동교구 제3대교구장에 착좌한다. 「함께 함」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교구민에게 신앙의 용기를 불어넣겠다 다짐한 목자로서의 길.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사목지표로 진정한 화해를 향한 첫 걸음이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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