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이러한 질문은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삼가야 할 불쾌한 것인가. 대부분의 한국인은,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해 일정한 해답을 지녀야 할 종교인들조차 죽음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아가는 듯하다. 죽음에 관해 성찰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죽음 후 남게 될 가족에 대한 배려와 실질적인 준비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하루살이처럼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바둥거릴 뿐이고, 죽음이 무시되니, 삶 또한 진정할 수 없다. 「어떻게 살까」와 「어떻게 죽을까」의 간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천이 요구되는 일은 없을까.
강경자(42·막달레나)씨는 지난 4월경 한마음한몸운동본부(02-727-2270)에 장기, 시신기증 서약서를 봉헌했다. 병명도 모른 채 12년간 투병생활을 해오던 강씨는 어느날 장기기증을 권유하는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이를 고려해오던 중 친지의 암 선고 앞에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죽음후 매장이나 화장으로 의미 없이 사라질 육신인데 남을 위해 봉헌하는 일이 더 낫다 느꼈어요. 처음에는 막연한 기분이었지만 서약서를 봉헌하고 나니 삶이 달라보여요. 왠지 뿌듯하고 산다는게 더없이 기쁘고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죠』장기기증은 이제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삶의 끝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숭고한 나눔 운동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이어지는 장기기증은 그리스도께 속한 생명을 마지막 순간 이웃에게 나누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실천으로 많은 신자들을 이끌고 있어 매년 기증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바람직한 죽음을 준비하는 실천으로는 올해 들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번지고 있는 유서쓰기, 자서전쓰기 운동도 생각해 볼 만하다. 각계각층의 명사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운동에서 권유하고 있는 것은 죽음을 앞둔 유언장은 아니다. 하지만 유서나 유언 자체를 금기시하고 불쾌한 의식으로 여겼던 과거와 비교하면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 놀라운 변화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 피정에서 유서를 써본 경험이 있다는 김경희(세실리아·57)씨는 『유언장을 쓰면서 지금까지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을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오히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아직 가톨릭 교회 내에서 활발하지는 않지만, 1984년 개신교인 서너명이 모여서 시작한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도 유서쓰기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차츰 번져가고 있다. 현재 이 운동의 회원은 420여명으로 대부분 교수 의사 변호사 중소기업경영인 등 전문직 종사자가 가입해 있지만 명단은 일체 비밀이다. 실천강령은 세 가지로 ▲해마다 유언장 새로 쓰기 ▲유산의 4분의 1만 남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기 ▲이 운동이 누룩처럼 소리없이 번져가도록 이웃에게 권하기 등이다.
이에 따라 지난 해에도 중소기업 사장 최모씨의 100억원 재산이 장학재단 복지시설 농아학교 등에, 대학총장을 지낸 유모씨의 전 재산이 모교와 종교단체 등에 기부됐다. 유족에게 남긴 것은 오로지 집 한 채였다.
최근에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상속문화를 점진적으로 개선한다는 취지로 「유산 1% 기증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은 운동을 주관하는 단체인 「아름다운 재단」(02-730-1235)이나 특정 사회단체를 지정해 재산의 1%를 약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론 자유롭게 약정률 및 약정액을 제시할 수 있으며 사후 약정 뿐아니라 현재의 재산을 산정해 약정하는 일도 가능하다.
위령성월을 맞아 죽음을 묵상하며 이같은 나눔운동에 동참하는 일은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음을 준비하는 적절한 자세일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준비는 죽음이 삶과 결코 별개일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도록 이끌 것이다.
더군다나 많은 경우 개인의 삶의 가치는 긴 일생에서 뿐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일련의 짧은 과정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년간 위령성월 때마다 「죽음체험 피정」을 마련하고 있는 김보록 신부(돈보스꼬 정보문화센터 원장)는 『관에 들어가기, 유서쓰기, 묘비 작성 등의 작업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며 묵상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말한 뒤 『위령성월에는 이미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개개인의 죽음을 깊이 생각하며 회개하고 성화될 수 있는 계기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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