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 폐지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김수환 추기경은 「2001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아시아 포럼 - 서울」 행사가 열린 11월 10일 오후1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로 이만섭 국회 의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추기경은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 뿐만 아니라 자신을 못박은 사람들도 살려달라고 청했다』면서 『사형제도 폐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만섭(요셉·아현동본당) 의장은 『개인적으로, 원칙적으로 사형폐지에 찬성한다』며 특히 『자유당 말기 정치범과 사상범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례들이 많았다』고 지적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사형제도는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의장은 피해자 입장, 국민 여론을 고려할 때 "흉악범이나 인륜파괴범의 경우에는 더 폭넓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특히 구치소를 방문해 직접 사형수들을 만나 본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진심으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한 사형수들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착하다』며 『객관적인 통계자료에 바탕을 두지 않고 다만 심정적으로 사형이 범죄 억제에 기여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연극제, 미술전, 음악회 등 성황
⊙…아시아 각국 대표들이 참석한 10일 포럼을 전후해 11월 한달 내내 열린 연극제, 전시회, 음악회 등의 행사들은 각 종단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성황을 이뤘다.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명동 마루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공연에는 매회 관람객이 만원을 이뤘다. 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룬 '아침새는 아침이 없다'라는 제목의 연극은 한순간의 잘못으로 사형수가 된 주인공이 새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과정을 그린 것. 연극을 관람하고 나오는 관객들의 눈시울은 누구 할 것 없이 젖어있었다.
상계동에서 온 김현정(35·세실리아)씨는 『평소에 그저 흉악범으로만 여겼던 사형수들에게도 자기 죄를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각국 대표단 서대문형무소 방문
⊙…각국 대표단들은 포럼 다음날인 11일 서대문형무소가 있었던 독립문공원을 방문해 시설을 돌아보면서 일제 치하에서 침략과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됐던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대표단은 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죄수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혼굿을 관람했다.
대표단은 이어 독립문공원에서 서울 경찰청에 이르는 1.3km 구간을 함께 행진하며 하루속히 사형제도가 폐지됨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기원했다.
▲ “사형은 또 하나의 살인” 각국 대표단이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 세워진 독립문 공원에서 서울 경찰청까지 사형제도 폐지촉구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 독립문 공원을 방문한 각국 대표들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무를 관람하고 있다.
▲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 세워진 독립문 공원에서 각국 대표단이 추모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방글라데시·파키스탄 대표 입국 못해
⊙…이번 포럼에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대표단도 참가하기로 했으나 9·11테러 사건의 여파로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짐에 따라 비자 발급에 어려움이 있어 미처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 전 사형수 체험 발표에 포럼 참석자들 숙연
⊙…포럼 참석자들은 진행 도중 일본에서 건너온 멘다 사카에씨의 체험 발표에 이르러서는 눈물을 훔치며 숙연한 표정이었다. 멘다씨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의 잘못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무려 34년 동안을 사형수로 수감돼 있다가 지난 1983년 무죄가 판명돼 풀려났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 인간의 평생을 파괴시킨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눈을 감고 기도를 바치기도 했다.
▲ 일본인 멘다 사카에씨가 자신의 체험담을 발표하고 있다.
교황대사, 포럼·음악회 등 빠짐없이 참석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대주교는 아시아 포럼과 열린 음악회 등 사형폐지 관련 행사장을 빠짐없이 방문해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생명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격려했다. 모란디니 대주교는 특히 11일 「열린 음악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지난 6월 21일 스트라스부르에서 개최된 제1차 사형폐지 세계 대회에 보낸 교황청의 선언문을 소개하며 교황 성하의 뜻을 전했다,대주교는 『교황 성하는 국가공동체가 잔인하고 불필요한 형벌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자신을 방어할 수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하고 기도한다』며 『사형의 보편적 폐지는 인류가 범죄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신념과 우리가 결코 절망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용기있게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음악회, 생명 존중 한 목소리
⊙…11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개최된 열린음악회는 2000여석에 달하는 공개홀을 관객들이 가득 메운 가운데 생명의 존엄성을 위한 열광의 무대였다. 음악회는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 한국평협 여규태 회장 등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치환, 양희은, UN 등이 출연했다.
김추기경은 직접 무대에 올라 「사랑으로」「사랑해 당신을」등 자신이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를 선사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빨리 사형제도가 폐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펼쳐진 열린음악회에서 무대에 올라 함께 노래하며 사형제도 폐지를 기원했다.
일본 현역 의원 6명 포함 대표단 60여명 참석
일본에서는 현역 국회의원 6명과 전 의원 1명을 포함해 모두 60여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사형폐지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대의 뜻을 표시했다.
이들 의원들은 「사형제도폐지를 위한 의원연맹」 소속으로 현재 일본 의원 중 76명이 가입돼 있다고 한다. 지난 1994년 결성된 이 연맹은 한때 190명까지 회원이 가입돼 있었으며 최근 총회를 거쳐 초당적인 모임으로 자리를 잡아 일본에서의 사형폐지운동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