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와 마리아의 시복
지난 달 21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는 2000년 교회사상 처음으로, 결혼한 부부가 동시에 시복되는 경사가 있었다. 이 새로운 복자는 로마에서 살았던 루이지 벨트레마 콰트로키(1880~1951)와 마리아 코르시니(1884~1965) 부부로서 평신도이며 순교하지 않고서도 성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선례를 남기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매일의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가면서도 성덕에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 평신도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교황님의 설명대로 그들 부부는 복음의 빛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살았고, 예외적인 방법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평신도들의 생활 일치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느님의 나라를 궁극의 목표로 삼아 성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역사 안에서 모범적인 평신도를 찾아보자면, 순교 400년이 되던 1935년에 시성된 토마스 모어를 귀감으로 제시할만하다. 엄격한 도덕적 태도를 지녔던 이 영국 정치인은 공직활동을 통해서 사람들, 특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했다. 그는 공평성에 대한 뛰어난 감각으로 사회적 논쟁을 다루었으며, 가정을 옹호하고 수호하는 데에 힘을 다 바쳤고, 젊은이들의 전인교육을 지지했다.
2000년 10월 31일 이 성인을 「정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명예와 부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청렴하고 기꺼운 겸손, 인간의 본성과 성공의 무상함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 신앙에 뿌리박은 판단에 대한 확신, 이 모든 것은 그에게 역경과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그를 지탱해준 확신에 찬 내적 힘을 주었다』고 지적하고, 『그의 성덕은 순교로 빛났지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헌신으로 일관된 전 생애에 걸쳐 준비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요컨대 성인은 신앙과 행동을 완전하게 조화시킨 분이다.
친교와 선교
교회의 친교, 이미 개인의 활동 안에 존재하고 또 거기서 이루어지는 교회적 친교는 평신도들이 모여 함께 이루는 단체활동, 즉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대한 책임 있는 참여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활동 안에서 그 구체적인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이 평신도들에게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찾도록』(「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31항) 임무를 맡긴 이래로 활발한 단체시대가 열려, 전통적인 단체와 더불어, 새로운 운동단체와 협의회, 공동체들이 생겨났으니, 평신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복음이 새로운 인류의 빛과 소금과 누룩이 되려면 자신들의 사도직이 필수적이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000년 11월 26일 「평신도사도직의 대희년」강론).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한 두 번째 해였던 「성령의 해」 성령강림 대축일 하루 전날, 즉 1998년 5월 30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60개에 이르는 교회운동·단체와 그 회원들 수십만명이 교황님과 함께 하면서(The Pope and the Movements. Together) 친교와 일치를 다짐했다. 이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여기 모인 여러분은 성령강림의 생생한 증거자들』이라고 강조하고, 『힘주어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튼튼한 양분을 섭취할 것』을 당부하면서 『모든 사람을 복음화하십시오. …교회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습니다』라고 격려했다. 이 모임이 있은 후 한국에서도 두 차례의 평신도대회를 계기로 교회운동·단체와 만나서 교회 안에서 한 형제 자매들임을 확인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튼 조직적인 사도직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친교와 일치를 나타내는 표지』(「평신도사도직교령」 18항)이며,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복음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23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복음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특히 모든 평신도들에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보다 먼저 신앙인 각자의 개인적인 삶을 감싸 안아야 하고, 그 자신이 개인적으로 복음화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복음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자신이 복음을 살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일 때 세상이 고대하는 증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향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형제들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그 복음을 우리 자신에게 먼저 선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교회의 선교사명」은 선교열의로 충만한 교회운동의 대단한 진전을 상기시키면서 『새로운 복음화의 각기 고유한 성격이 선교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신 참된 선물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72항)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들 운동 단체들을 통해 교황께서 21세기 교회의 봄을 내다보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증거/새천년기를 시작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1월 6일 대희년을 마감하는 예식에 이어 발표한 교황교서 「새천년기를 시작하며」(Novo millennio ineunte) 제3장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롭게 출발하기」에서 말씀 선포의 근원이 되는 말씀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역설하고 있다. 이어서 제4장 『사랑의 증인들』에서는 「친교」에 관해서 누누이 언급하고 있다. 선교의 목적은 친교이며, 선교에 나선 우리는 결국 친교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친교의 주체는 공동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복음화의 목표인 친교를 이루려면 먼저 친교를 체험해야 하고, 친교를 전해주는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만 말하는 바를 실제로 보여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새천년기를 시작하며」에서 『교회가 공동체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한국평협이 전개하고 있는 「똑바로 운동」도 나와 이웃 사이에 「증거」를 드러내 보이자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의 취지에는 찬동하지만 「똑바로」스티커를 붙이기에는 자신없어 하는 이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교황 독려에 귀기울여봄직하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에 응하십시오.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도직의 결실은 깊이 있는 영성생활과 끊임없는 간절한 기도, 지속적인 교육과 교회의 지침에 대한 진심어린 충실함에 달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평신도 사도직의 대희년」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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