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6일 정오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내 새 사제학교를 방문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이제 첫 발을 내딛는 신부들에게 첫 화두로 던진 것이 사제의 권위문제였다. 신자들 스스로 사제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성덕을 쌓는 것이 바로 사목자로서의 권위를 세우는 길이란 것이 얘기의 요지였다. 사제 수품 후 8월말부터 11월말까지 새 사제학교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새 사제 24명은 이날 교구장 정대주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새기며 시종 진지하게 경청했다. 다음은 정대주교의 강연 요지.
그리스도 대리자인 여러분들은 우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권위있으신 분이라 말씀하셨지, 권력이란 표현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시대에 권력자는 헤로데를 비롯한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권위와 권력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권위는 마음으로부터 복종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권력은 강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권위는 자발적으로 존경과 복종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한 것은 예수의 권위를 존경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 사목자들은 권위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칠 때 권력이 아니라 권위로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귄위의 요건은 존경을 받는 것이므로 권위와 존경은 필연적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존경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존경심을 받기 위해서는 성덕이 필요합니다. 덕이 없는 사람은 결코 존경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제들은 성덕이 필요합니다. 즉 사람 됨됨이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제는 무엇보다 언행일치가 돼야 합니다. 강론 내용이 바로 자기에게서 실천되는 사람, 강론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말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사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좋은 열매를 맺는 그런 말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으로서의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부 신자들의 경우 『미사가 지겹다』고 하는 가장 핵심은 강론입니다. 즉 『강론이 지겹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신자들의 경우 강론을 듣기 위해 본당에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신자들에게서 미사는 본당에서 보고 강론은 여의도 조용기 목사에게 가서 듣는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사 구경은 본당에서, 영혼의 양식은 여의도 조용기 목사로부터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사목자들은 크게 마음을 써야 합니다. 한 주일 한 시간 미사의 경우 전부 공통되지만 다만 10~15분하는 강론은 각 본당마다 다릅니다. 강론이 맥이 없으면 미사 참례가 재미없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따라서 강론이 재미가 있다면 그만큼 사제들의 의무 수행이 수월해질 것입니다.
일부 사제의 경우 강론을 신문이나, TV에 나온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사제가 10분의 아까운 시간에 신자들이 다 아는 얘기를 하는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영혼의 양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강론을 통해 한 주일을 버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강론은 아무리 준비하고 많이 노력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제들은 충분히 생각하고 또 고치는 작업이 반복돼야 하고, 강론을 준비하는 동안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반말하는 사제를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만약 함부로 반말을 했다가는 바로 응답송이 올 것입니다. 우리 사제들은 존대말과 함께 인격을 존중하고 있다는 표현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젊은 청소년들에게는 친근감의 표시로 반말을 할 수 있겠지만, 자신보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많은 신자라면 존칭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사제로서의 타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신자들은 그 사제가 존경받을 수 있는 타입이냐, 아니냐 등을 평가합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2년만에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처럼 사제들도 모든 신자들에게 존경받는 타입이 되느냐 아니면 비난받는 타입이 되느냐는 첫 번째 보좌 시절에 형성됩니다. 이 첫 보좌 2년이 내가 장차 행복한 사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2년간의 첫 보좌 시절을 사제수업을 위해 사는 시간이라 생각해야지 본격적인 사목을 위해 사는 시간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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