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경본 번역을 마치기 위해 그 후 1년을 수녀원에서 지내던 중 74년 10월 9일 번역을 완전히 끝낸 원고를 천주교중앙협의회 출판부에 넘겨주고 돌아왔다. 바로 그날 교황대사님으로부터 나를 주교로 서임하고 수원교구장으로 임명하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왜관으로 갈지, 부산으로 갈지 고민하던 나로서는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이를 수락하기로 하고 교황대사님께 의견을 알렸다. 그래서 74년 10월 14일 주교 임명이 발표됐고 그해 11월 21일에 주교 서품을 받았다.
나는 제2대 수원교구장으로 부임하면서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를 사목의 모토로 삼았다. 남북분단과 영호남 갈등, 정치적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민족의 시대적 상황이 참으로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수원교구의 주교로 착좌하면서 교구민들에게 우선 호소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일치」였다.
▲ 1974년 교구장에 착좌 후 취임사를 하고 있는 김남수 주교.
사실 나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교구 주교들은 누구나 구걸을 해야 했다. 그래서 주교 능력은 구걸 능력에 달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88년 수원교구 설정 25주년 행사 때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의 원조를 받지 않고 도움 받은 것을 가난한 교회에 되돌려 갚을 것을 선언했다. 그 때부터 아시아 주교회의가 개최될 즈음이면 신부님들에게 돈을 얻어 오천불씩 그 지역 주교님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주교님들을 만나면 누가 가난한지 얼굴만 보면 알 수 있었다. 오천불을 가지고 인도, 말레이지사 등 동남아시아 주교님들에게 오백불씩 주면 열군데나 줄 수 있었고 그것이 그 나라에서는 꽤 큰 가치를 지녔다.
교구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을 꼽자면 바로 한국외방선교회를 창설한 것이다. 75년 2월 주교회의에서는 최재선 주교님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 한국외방선교회의 창설을 정식으로 결의했고 최재선 주교님, 정진석 주교님에 이어 내가 제3대 외방선교회 총재를 맡았다.
외방선교회를 육성할 필요를 느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시아 지역을 복음화 하는데 있어 선교사다운 신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일꾼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사실 능력있는 일꾼을 파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는 만큼 선교사제의 역할은 수도사제만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발전하는 외적표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 외방선교회이다. 외방선교회는 우리나라 성숙의 한 척도가 되며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장 빛나는 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수원신학교의 설립이다.
80년 춘계 주교회의에서 수원신학교의 설립을 제의했으나 반대에 부딪치던 중 82년 5월 드디어 수원신학교 설립안이 의결됐다. 그해 8월부터 수원가톨릭대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개하고 83년 4월 본관 신축 공사를 시작, 88년 5월 6일에 준공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신학교 설립 과정은 여러 가지 문제로 좀 어려웠지만 신학교는 사제수 증가와 교구 성장의 기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와 함께 미리내 수도회의 설립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9번째 방인수도회인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는 1975년 교구 인가를 받고 출발해 여자수도회는 84년 2월 2일자로 남자수도회는 91년 3월 19일자로 교황청의 회칙인준과 교구장 인가서를 받음으로써 수원교구 설립 수도회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성모성심 수도회는 1948년부터 설립준비를 해왔으나 그동안 교회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렵게 태동한 만큼 수도회 체제를 갖춘 연륜에 비해 상당한 저력을 보였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자 수도회 회원수가 500여명, 남자 수도회 회원수가 110여명에 달하니 이는 실로 대단한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축복받은 수도회를 수원교구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큰 자랑거리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수원교구는 아직 발전도상에 있으니 주교님도 신부님도 할 일이 많다. 하느님 안배에 맡기고 신부님들이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새 주교님을 도와 수원교구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