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몸의 영성
인간이 되신 하느님, 하느님의 육화가 육체에 대한 힐데가르트의 사상을 결정적으로 규정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힐데가르트는 하느님의 육화를 인간 원죄의 결과로 보지 않고 영원으로부터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 되신 분이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사랑하였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자신의 육체를 그렇게 사랑하며 그린다. 창조의 세계 모든 것에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 있어 하느님의 모습을 비추어 주듯이 육체는 영혼을 비추어 준다.
중세에 빈번이 인용되던 성 아오스딩의 위계적인 이분법. 곧 '육체-지상(현세)적인 원리'와 「영적-천상의 원리」를 구분하고 후자를 우위에 두면서 현대엔 입증할 수 없는 근거로 이를 성에까지 적용해서 남성을 여성의 우위에 두었던 내용: 『태초에 하느님의 뜻이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시고 영적인 창조물을 육적인 창조물보다, 이성적인 것을 비이성적인 것보다, 천상의 것을 지상의 것보다, 남성을 여성보다, 부유한 이들을 필요한 이들보다 우위에 두셨다』 힐데가르트도 이 흐름에 따라 영혼을 우위에 두기는 하였지만 힐데가르트에게선 몸과 영혼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혼은 수분이 온 나무에 젖어 흐르듯이 온 몸에 젖어 흐른다. 수액(樹液)이 나무를 푸르게 하고 꽃피우게 하고 열매맺게 하듯이…』(Sci. 133).
『영혼은 육체를 생기있게 하지만 육체는 영혼을 생기있게 하므로 영혼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또한 육체를 필요로 한다…전반적으로 영혼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육체를 사랑하여 품어 안는다』(LDO 168).
그리고 힐데가르트는 최후의 심판 때에 육신이 부활한다는 것에서도 육신의 귀함을 인정하는 표현을 본다. 영혼이 육신을 그리워한다는 표현으로. 『영혼이 자기가 사랑했던 옷, 육신의 옷을 벗기웠기 때문이다』 이 결합에 상응해서 질서 지워진 생활의 지침하에서도 육신이 멍에를 지지 않는다. 영혼과 조화있는 관계이다.
『영혼과 육신이 진정 서로 일치하여 지내면 그들은 단결된 기쁨 안에서 최고의 삯을 받는다』(LDO 80).
영혼과 육신이 하나라는 힐데가르트의 강조는 실제로 자신이 이전에 겪은 심리적 신체질환에서 새겨져서 더 나아가 근대적인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서 육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도록 하는 연결점으로서 기여한다.
인간의 육체에는 성(性)도 포함된다. 생식행위를 통해 원죄가 이어진다는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이 힐데가르트에게 부담이 되었지만 힐데가르트에게선 하느님께서 이성의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것이 몸 전체에도 관련이 된다. 『성기에서도 이성의 선물이 꽃핌으로써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성행위에서 기쁨도 느낄 수 있다』(LDO 63). 전체 우주는 생명을 주는 「녹색 생명력」으로 맥이 뛴다. 힐데가르트는 이로부터 유추해서 「생식행위에 있어서의 녹색 생명력」 또한 알았다.
인간의 고유한 특성과 소명은 몸에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면에서 포괄적인 인간의 위대함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몸을 잘 관찰하여야 한다.
4. 녹색 생명력(viriditas)
녹색 생명력은 대우주 자연과 소우주 인간에게 함께 작용하여 생명을 주는 단일한 힘, 우주 전체의 맥을 뛰게 하는 것이다. 힐데가르트가 이 말을 사용하는 경우를 몇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녹색 생명력은 원래 식물 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몸과 영에도 작용한다.
『오, 푸른 물오르는 새싹이여』
성 디지보트를 기리는 노래에 있는 『오, 푸르름이여, 하느님 손길에서 나온 녹색의 생명력이여!』, 그리고 이와 같이 모든 것에 작용하는 「하느님의 녹색 손가락」.
「아버지의 사랑, 그 마음의 녹색 빛의 근원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행하신 것들은 녹색 생명력이라고 표현한다. 성령은 영성적인 녹색 생명력의 담지자이시며 행위자이라 하고 세계의 원 안에 초록의 겉옷을 입고 있는 하느님의 여성적인 형상, 지혜와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초록중의 초록인 동정녀 마리아, 그로부터 연한 녹색, 곧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나오셨다 하고 모든 창조력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서도 녹색 생명력이 활동했다고 한다.
이처럼 「천상 신비에 담긴 마음, 사랑의 힘」, 하느님이 만드시고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힘, 생명을 낳고 키우고 열매맺게 하는 모든 힘이 여기에 있다. 비유적으로 식물과 동물, 모든 남성과 여성의 합일에 작용한다.
건강은 녹색 생명력 곧 초록에 다시 연결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자연과, 곧 땅과 우주와 대화하고 이를 지키고 완성하도록 하는 소우주이고 자연은 자신의 대우주 창조를 완성하도록 인간과 함께 연대하며 작용한다. 소우주 인간이 전체 질서와 내적인 질서의 조화를 이루어 내적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건강이므로 이를 위해 적당한 정도를 찾을 수 있게 판단하고 구분할 수 있는 덕이 필요하다.
5. 조화의 교향곡
세계는 음향으로 이루어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기 고유의 음을 지니고 있고 삶은 무엇보다도 그 음이 끊임없이 진동하며 울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누구나 각자 자신의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기울여 자신의 특별한 음, 자기 고유의 「기본음」을 알아내야 한다.
귀기울여 자기 고유한 음의 형태를 알게 되면 이들이 각자 일정 자리에 배치되어 울리는 전체 협주, 더 큰 전체의 질서에 자리잡을 수 있다. 어떤 음이나 고립해서 홀로 머물지 않고 다른 음들과 조화롭게 함께 울리는 화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는 우주를 형성하는 근본요소들의 「기본음악」을 깊이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귀기울여 들었다. 세계가 소리를 지닌 창조, 음을 울리는 창조라는 것을 자주 언급했다. 힐데가르트의 시각적인 비전의 선물이 이렇게 분명하게 청각적인 능력으로 보충되었다.
힐데가르트에 따르면 창조된 것들은 모두 각자 웅장한 창조의 교향곡을 울리게 하는데 기여하는 자기 고유의 음을 지니고 있다. 이로써 구원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귀로 들을 수도 있게 된다. 이런 요소들만이 자신의 특정한 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자기 고유의 음향을 지닌다.
『인간의 영혼은 내부에 듣기 좋은 음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소리는 스스로 울린다』하느님의 소리가 전하기를 『나는 모든 창조물에 찬미하며 울리는 하모니(조화)로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세계는 생동하는 균형을 유지한다. 상호보완적인 긴장으로서 함께 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의 이해에 따르면 이렇게 세상은 조화를 이루는, 하모니를 이루는 전체이다. 어떤 소리도 홀로 자신만을 위해 머물지 않는다. 다른 소리와의 합일을 깊이 바라고 메아리, 반향이 있기를 바란다. 서로 대화하는 이런 기본구조와 법칙은 태초에 하느님이 이 세상에 부여한 것이다.
『나는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를 지녔다. 이 소리로 온 세상이 모든 창조물의 살아있는 소리로, 살아있는 음으로 움직이게 하였다』(LDO 169). 게다가 인간에겐 특히 음악적인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인간의 심장은 교향곡처럼 정해져 있다. 교향곡처럼 울리는 인간 정신의 소리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엔 달고 아름답다』그러나 이것을 혼자서만 누려선 안 된다.
『다른 모든 창조된 존재들과 함께 웅장한 울림이 되도록 불어가게 해야 한다』사람이 노래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그러므로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천상 화음의 반향」이다. 인간 영혼은 하나 하나를 천상 하모니 전체 안에서, 전체에 연관해서 세운 창조 계획 안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 음악의 일부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울려 노래해야 한다.
한편 음악은 치료효과도 갖는다.
『노래는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준다. 회한의 눈물이 흘러나오도록 하고 성령이 옆에 오시도록 부른다』(Sci. 356)원래의 근원을 기억해서 영혼을 울려 이 전체 안에서 자신을 쇄신하도록 함으로써,『자기 집의 닫힌 문 앞에서 헛되이 문을 두드리고 있던 영혼 안에서 정신이 작용할 수 있도록 그의 뒤엉킨 상태를 정리해준다. 이제 음악이 강제로 힘을 가하지 않고도 아주 조용하게 영혼의 문을 연다』
6. 생기 불어 넣는 조력자
'덕'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책임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신적인 힘, 인간에게 주어진 은총의 선물이다. 곧 하느님의 선물이자 인간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건조한 덕의 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삶 안에서 인간과 하느님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생동하는 형태이다.
힐데가르트에게 있어서 식별(diskretio)이 전체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고 내적인 창조의 질서를 찾는 '모든 덕의 어머니'(서한집 99, Sci. 252)이다. 베네딕도 수녀회 규율에서 깊이 새겨진 부분이기도 하다.
식별의 기능은 알갱이와 쭉정이를 세세하게 철저히 살펴서 알찬 것은 고르고 속 빈 것은 버리도록 하는 것과 같은 기능인데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으로 현명한 판단, 태도로서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식별은 하느님 자비의 밝게 빛나는 구름으로부터 인간 정신으로 불어가 그 안에서 식별하도록 하고 밝혀주는 하느님 선하심의 밝은 불꽃』(Sci. 261)이다.
이 식별을 통하여 삶에서 과도함을 피하고 전체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고 내적인 창조의 질서를 찾는 적당한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느님이 수없이 다양한 창조물간의 관계를 바르게 고려하며 일하듯이 인간도 식별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 행위를 충분히 잘 재어야 한다』(Sci. 262). 여기서 적당한 「정도」는 이론적으로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활세계에서 읽어 알아내도록 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누구나 내면을 귀담아 듣고 더 큰 전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인지함으로써 「자신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힐데가르트는 몸과 영혼의 치료를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에, 식별은 당연히 육체적인 욕구를 제대로 충족하도록 돌보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의 몸에 적절히 영양을 주면 그 행동도 밝아지고 다른 이들과 잘 교류한다…. 자신의 몸을 분별없이 과도한 금욕으로 해치게 되면 그는 늘 분노를 보인다. 이 모든 것에서 너는 「좋은 땅」이어라』
힐데가르트의 저작과 또한 서신에서도 식별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구체적인 예가 늘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음식은 심신이 상쾌해질 정도로 적당히 섭취해야 한다. 그로써 영혼이 기쁨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먹고 마실 때에 어떻게 식별이 관리하도록 하는가, 그래서 다른 이와의 친교에서도 이 덕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의 틀 안에서 모든 경우에서처럼 서로의 대화에서 친절하고 정감 있게 말함으로써 이웃에게 인간적인 것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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